영화제를 정기적으로 찾지 않는 <씨네21> 독자라면 왜 우리 외신기자클럽 멤버들이(여배우들에게 더 매료되어 있는 아드리앙 공보를 제외한다면) 영화제에 대해서 그처럼 자주 쓰는지 의아할 것이다. 영화제는 단순히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 이상의 무엇이다. 단순히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라면 집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영화제는 매년 일주일에서 이주일 동안만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와 같다. 이 공동체는 나름의 독특한 개성과 성격을 갖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 관객과 감독 양쪽 모두에게 강렬한 경험이다. 많은 감독들(그리고 그들의 친구와 가족들까지)은 결국 주류영화시장은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영화제는 이런 희생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매우 다른 가치를 가진 장소다.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고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닌 관객 앞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은 감독들에게 소중한 경험이다. 영화에 빠삭한 영화제 관객의 반응은 감독들에게 작업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따라서, 좋은 영화제가 있음으로 해서 더 많은 좋은 감독들이 나올 수 있다.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열정적인 관객 틈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시켜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제에 가기 위해 여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일년 중 가장 흥분되는 일이다. 따라서 영화제의 잘 드러나지 않는 내부 작업들조차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늘 내가 생각한 주제는 영화제의 기념 행사에 대한 것이다. 부산은 2005년에 그 10번째를 기념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올해 10번째가 되었으며, 전주는 2009년에 그 10번째를 기념하게 된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니스영화제는 오는 9월에 예순다섯살이 된다(이제 은퇴해서 노령연금을 받아도 될 나이다!).
이런 특별한 순간을 기리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영화제들은 본능적으로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여 더 많은 프로그램과 특별 행사, 출판 등을 기획한다. 그 의도가 더 특별한 이벤트를 위해서라면 틀린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날을 특별한 날로 바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생일 파티와 달리 영화제는 이미 굉장히 특별한 행사다. 거대한 기념 행사들이 자주, 여섯 번째 손가락이나 세 번째 팔처럼 불필요하다는 느낌을 주고 끝나곤 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어떤 면에서 나는 차라리 영화제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관객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 말이다. 영화제를 단지 프로그램이나 영화제가 제공하는 서비스로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제가 독특한 자신만의 관객층을 형성해왔는지 또 그런 관객의 요구에 맞도록 자신을 조정해왔는지 하는 거다. 관객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제는 결국 쓸모없는 행사일 뿐이다. 많은 수의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찾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걸맞은 프로그램은 다른 국제영화제에는 부적합할 따름이다(다른 한편으로 ‘아시아영화마켓’을 열기로 한 부산의 결정은 실수였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시장이란 필요없었다).
많은 특별 기념행사 계획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프레스의 이목을 좀더 끌려고 기획됐기 때문이다. 명성이나 평판은 더 많은 예산으로 살 수 없다. 영화제의 훌륭한 평판은 결국 그 관객에게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나는 10번째, 20번째 생일을 겸손한 침묵 속에서 잘 짜여진 행사로 만들어내는 데 더 집중하는 영화제를 존경한다. 꼭 무언가 해야 한다면, 관객과 영화제의 관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지난 영화제들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영화들을 모은 “앙코르” 섹션 정도라면 좋을 것 같다. 기념 책자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필요하게 큰 영화제를 기획해서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심을 흩뜨려놓는 행사는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