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장이 그렇게 대단한 자리인 줄은 미처 몰랐다. 제4기 영화진흥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예상보다도 치열하다. 5월6일 마감한 영진위원장과 영진위원 공모에는 각각 15명과 60명이 응모했다. 영진위원장은 15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고, 영진위원의 경우 관행적으로 유임될 1명을 제외하면 8.6 대 1의 경쟁을 거쳐야 한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접수 당일 마감시간에 임박해 양복 입은 남자들이 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양새가 이채로웠단다. 한편 <씨네21>(651호)이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영진위원장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혔던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은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제 4기 영진위 구성을 위한 1라운드는 끝났다. 5월7일 열린 임원추천위원회가 영진위원장 후보 15명 중 5명을 추려냈기 때문이다. 이들 5명은 이번주 중에 임원추천위원들을 상대로 면접을 치르게 되고, 이를 통과한 3~5명의 명단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로 넘어가게 되며, 최종 선임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다.
보기에 따라 영진위원장은 대단한 자리일 수 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데다 영화정책을 만들어나감에 있어 최전선에 설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3개 기수가 활동해오면서 사무국의 시스템은 단단해졌다. 결국 영진위원장이라고 해서 지원사업이나 투자조합사업에 마음대로 관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진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한국영화산업을 발전시키고자 나선 경우도 있겠지만, 필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분도 있을 터. 사심을 가지신 분들이 듣고 찔리라고 영화인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영진위원장이 갖춰야 할 점’과 ‘영진위원장이 갖춰서는 안 되는 점’을 읊어보겠다.
갖춰야 할 점. 1) 영화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력 2) 방송, 통신 관련 위원회와의 통합 논의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 능력 3) 영화산업의 위기를 돌파하는 비전 4) 문화다양성 등 기존 사업을 계승, 발전할 수 있는 의지. 갖춰선 안 되는 점. 1) 영화계 다수의 바람과 희망에 대한 저항정신(예: 스크린쿼터 폐지, 사전심의 옹호) 2) 현실을 거스르는 강한 이데올로기 지향성(예: ‘독립영화=좌파’ 지원 중단) 3) 기존 영진위 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무모함(영화산업, 위기에서 몰락으로) 등. 만약 현 정부가 잘못된 인선으로 지지율을 꾸준히 까먹어왔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닫고 있다면 어떤 이를 영진위원장에 선임해야 할지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