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여행을 다녀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꼬마와 그의 엄마를 만났다. 핀을 제대로 꽂지 않았다고 자외선 차단 크림을 얌전히 바르지 않았다고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닌다고 애는 죽도록 엄마한테 갈굼당했다. 전형적인 대리만족형, 스트레스 해소용 양육태도였다. 엄마가 개가하거나 천선하지 않는 한 크면서는 학원으로 뺑뺑이 돌며 ‘엄마가 보고 있다’는 표어를 잣대로 한 시절을 나지 않을까 싶었다. 방임을 포함한 아동학대 행위자의 특성을 보면 30% 가까이는 양육태도 및 방법 부족이고, 25% 이상은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및 고립이라고 한다. 중독이나 질환, 성격 문제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2007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 꼭 부모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아이를 학대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돌아와보니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력 사건으로 시끌벅적하다. 2006년 1학기부터 적어도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성폭행, 유사성행위, 성적 괴롭힘 등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했단다. 남자아이들끼리 ‘야동을 흉내내며’ 시작했는데 점차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수십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폭력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어린 여자아이를 상대로 한 집단 성폭행도 일어났다. 위계와 폭력, 은폐로 작동되는 집단 성학대로 ‘발전’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해 11월 교실에서 아이들이 성행위 흉내를 내는 것을 본 담임교사가 교장에게 보고하고 교육청에 문의했는데도 별다른 조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교조, 여성단체 등이 나서서 공동대책위를 꾸리면서 고구마 넝쿨처럼 줄줄이 밝혀졌다. 학교와 교육청의 높은 분들은 진급과 승진에 영향을 끼칠 이런 일이 부디 내 임기 동안 일어나지 않길… 바란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길 바랐던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소유한 빌딩의 노래바(방?)에서 도우미 서비스와 2차 접대가 횡행하고, 집권여당의 공식행사장에서 “남자가 좋아하는 직업은 엘리베이터걸, 간호사, 골프장 캐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연사의 발언이 등장한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제정신이길 바라는 것 자체가 음란한 생각이다.
교사에게 ‘발견’된 가해·피해 아이들 중 지속적으로 상담치료를 받은 아이도 드물었다. 먹고사느라 바쁜 부모들은 대뜸 혼내기부터 했을 공산이 크다. 일부 교사들은 모른 척하거나 “사내애들끼리 그럴수도…” 취급했다. 있는 집 아이들은 감시로 학대당하고 없는 집 자식들은 방치로 학대당한다. 부모의 계급에 따라 유형만 달라질 뿐이다. 이런 가운데 이뤄지는 경쟁과 성장의 과실은 대체 얼마나 달콤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