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이 하나 있다면 대여점에 들어오는 고객마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볼 게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그다지 테이프 사입량을 줄인 것도 아닌데, 내가 보아도 ‘볼 만한 신프로 테이프’가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신문을 펼쳐보면 아직도 ‘영화시장은 건재하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개봉하는 영화가 쏟아지는데도 결국 그 영화들이 모두 비디오로 출시되는 건데 ‘볼 영화가 없는’ 것은 왜일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항상 건재하고, 이례없는 한국영화의 약진은 위축되었던 비디오업계에 새로운 활력이 되리라 생각했던 기대감은 너무 어설픈 예측이었던 것이다. 요즘 ‘한국영화 흥행 극과 극’, ‘흥행영화 편중화 극심’ 등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은데 비디오산업까지 바로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양이를 부탁해>와 <나비>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이제야 ‘영화의 다양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처럼 소란을 떨지만, 소비자 밀착형인 비디오업계에서 보았을 때 시장의 흐름은 이미 흥행영화 편중으로 치닫던 중이었다.
극장가와 마찬가지로 이젠 대여점에서도 고객은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만 찾고, 다른 영화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물론 대여점주들도 흥행작 외엔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제작사에선 안 팔릴 것이라고 출시를 주저하고, 대여점주들은 살 게 없다고 아우성이고, 고객은 볼 게 없다고 그냥 가고…. 이런 식의 산업적 파행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