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활황이 어쨌든 반가운 일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좀은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다. 마치 시험보는 데 몇 문제 못 풀고 모조리 찍었는데 만점을 받아버린 것처럼, 박수는 받고 있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인지 이런 폭발적인 흥행 기류에 대한 분석과 전망도 분분하다.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는 이런 ‘찜찜함’의 원인을 이른바 거품현상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최근 열린 영화평론가협회 추계 세미나 발제문(‘한국영화산업의 심각한 불안’)을 통해 강 교수가 내놓은 거품성장론이란 한국영화의 비약적인 성장이 “한국영화의 수준이 향상되었거나 영화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에 기인한 자생적인 성장이라기보다 김대중 정부의 포퓔리슴적인 정책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정부가 영화쪽에 편파적으로 많은 돈을 끌어다대며 제작편수를 늘리고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투입량 대비 생산량 즉 생산성”을 늘리기보다 단순 산출량만 늘리는 맹목적인 ‘군대식 전략’이라고 비판하면서, ‘눈부신 쏟아붓기’에서 비롯된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은 질적인 성장이라기보다 양적인 성장”이라고 규정했다.
강 교수가 발제문에서 주장하려는 전체적인 취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새겨들어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다르게 보는 점이 있다. 먼저 지금의 거품현상이 전적으로 정부의 포퓔리슴적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을 수긍하기 어렵다. 강 교수의 주장처럼 나랏돈이 영화산업의 흐름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정부가 돈을 앞세워 채찍을 휘두른다고 제작편수를 크게 늘릴 수도 없을뿐더러 현재 영화계에 유입된 자본의 상당액은 금융자본이든 벤처자본이든 어쨌든 민간자본이다. 그나마 나랏돈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예전처럼 영화 한편에 몇억원씩 나눠주며 바보같이 쓰지는 않고 있다. 영진위가 해마다 투자조합에 100억원 가량을 출자했던 것처럼 직접 지원이 아니라 영화전문 투자조합에 출자해 자금 풀을 만들어주는 것이 큰 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강 교수의 주장대로 “금융자본의 투기”와 흙탕물을 튀기는 일부 뜨내기 뭉칫돈이 아닐까. 또 현재의 양적 성장을 너무 가벼이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양적 성장은 반드시 질적 성장을 가져온다는 변증법적 논리에 따르면 지금의 양적 성장을 ‘심각한 불안’의 징표로 걱정하는 것은 기우라는 생각이다. 물론 배급 메커니즘에 대한 대안은 여전한 숙제이지만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질적 성장도 이뤄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한편 굴뚝없는 영화산업의 생산성을 강 교수의 주장처럼 “그저 더하기 빼기의 기초적인 셈본만 알아도 충분”한 정도의 ‘투입량 대비 생산량’으로 타산해서도 안 된다. 규모와 컨셉 등 복잡다기한 요인을 포괄한 영화의 생산성이란 천차만별이어서 단순 수치로 가늠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강 교수 거품론에는 일면 실수로 보이기도 하지만 논거를 뒤엎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 강 교수는 ‘쏟아붓기’의 근거로 ‘1편 평균 총제작비가 1995년에 비해 2001년 상반기에는 330% 늘어난데 비해 관객 수는 1995년 1200만명에서 2000년 2천만명으로 166% 늘어 투자액 증가(330%)에 비해 매출액 증가(166%)는 절반 정도에 그쳤다’고 예시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사실과 다르고 비교 또한 적절하지 않다.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1995년 관객 수는 944만명이고 2000년에는 2189만명으로 231% 늘었고, 흥행수입은 1995년 393억원에서 2000년 1163억원으로 295% 증가했다. 게다가 강 교수는 총제작비는 2001년 상반기까지의 증가치를 기준으로 잡고 관객 수는 2000년까지 증가치를 대비하는 바람에 결과를 왜곡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아보면 1995년에서 2000년까지 총제작비는 215% 늘어났고, 같은 기간 관객 수는 231%, 흥행수입은 295% 늘어나 강 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제작비 상승치보다 매출액 증가치가 오히려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