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으로 ‘미학’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저자가 이번에는 강의안을 토대로 서양미술사를 개관했다. 단호하고 투명한 글투는 여전하고, 잔잔한 시야에 이미지부터 냅다 던져 논의에 시동을 거는 화법도 변함없다. <서양미술사I>은 걸작들의 면면을 시대순으로 열거하고 예술제도의 변화를 부언하는 양식사를 배제한다. “피상적 사실의 홍수”로 독자를 헛배 불리기 싫어서다. 물론 겉보기에 이 책은 고대부터 모더니즘까지 차근히 순차 편집된 통사다. 그러나 내용은 형태와 색채, 투시법 등의 조형 원리와 역사적 헤게모니를 번갈아 장악한 이질적 예술 충동에 대한 해명이다. 저자는 각 장의 화두와 관점을 과거 연구자들로부터 빌려왔는데 이는 <서양미술사I>을 미술에 관한 책인 동시에 미술사관(史觀)의 역사로 읽게 한다. 예컨대 파노프스키는 비례론과 원근법, 아순토는 중세인의 미감을, 알베르티는 <회화론>을 ‘제공’했다. 중세의 미 개념과 동구의 역원근법을 소개한 대목이 제일 재미나다. 고대와 근대미술의 격세유전,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중세 장인과 현대 화가의 공통점을 알고 나면 당신의 눈앞에는 서양미술사가 (무게중심이 지그재그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