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호감 지수 ★★★ 교훈 지수 ★★★☆ 성인관객 재미지수 ★★☆
<호튼>은 너무 작아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세계의 ‘천재지변’으로 시작한다. 둥근 이슬 한 방울이 풀잎에 미끄럼을 타더니 솔방울을 굴리고 그 솔방울이 민들레 군락을 들이받는다. 예민한 꽃들은 와글와글 홀씨를 공중에 흩뿌리고, 그중 먼지 한톨이 샤워 중이던 코끼리 호튼(짐 캐리/차태현)에게 날아간다. 구해달라는 가냘픈 비명의 출처가 먼지임을 발견한 호튼은 그 안에 사는 조그만 사람들을 보호하겠다고 결심한다. “아무리 작아도 사람은 다 사람”이라는 호튼의 대사는 이 이야기의 씨앗이자 열매다. 연통을 통해 우연히 호튼과 인사를 나눈 ‘누군가 마을’의 시장(스티브 카렐/유세윤)은 덩치 큰 새 친구에게서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약조를 받는다. 하지만 티끌을 애지중지하는 호튼을 정글의 이웃들은 미친 코끼리 취급한다. 평소 호튼이 아이들의 교사 노릇을 하는 걸 못마땅해하던 극성 엄마 캥거루(캐롤 버넷/최수민)는 먼지를 없애려는 계획까지 세워 ‘누군가 마을’은 급기야 묵시록적 위기를 맞는다. 닥터 수스의 원작은 약 17분이면 구연이 마무리되는 단출한 우화다. 이를 1시간 반짜리 영화로 확장하기 위해 각색자들은 잔가지 이야기를 붙이고 요즘 팝 문화를 인용하는 개그를 가미했는데, 다 성공적이지는 않다. 이를테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 마을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소리 높여 합주하는 장면에서, 결정적인 한음을 보태는 캐릭터는 원작의 동네 게으름뱅이에서 시장의 막내(무려 96녀 1남 중 외동아들)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유의 부자 갈등과 화해는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선반에서도 먼지가 앉은 설정이다. 외골수지만 따뜻하고 푸근한 캐릭터 호튼의 성격이 줄곧 쏟아지는 농담과 슬랩스틱을 소화하느라 또렷하게 그려지지 못한 점도 애석하다.
<호튼>은 닥터 수스 원작을 각색한 영화 중 최고다, 라고 단언한들 대단한 명예는 못 된다. 팬들을 지금도 진저리치게 하는 <그린치>나 <더 캣>보다 평판 나쁜 영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 <호튼>은 이야기만큼 독창적인 닥터 수스의 삽화를 스크린에 옮기는 데 있어 실사보다 유능하다. <호튼>은 3D 컴퓨터애니메이션이 유혹받기 쉬운 반짝이는 표면과 날아다니는 시점의 유혹을 외면하고 그림책 미학에 충실하다. 이야기 속 이야기를 표현할 때는 재패니메이션이나 카툰풍에 가까운 평면적 애니메이션도 적절히 동원한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울고 갈 만한 건축물들이 즐비한 ‘누군가 마을’의 디자인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 작은 문명이 꽤 진화된 상태임을 암시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누군가 마을 주민’들이 입 모아 “우리 여기 있어요!”를 외치는 대목. 과연 <피터팬>의 팅커벨 소생 장면처럼 어린 관객이 함성에 합세할지 사뭇 궁금하다.
호튼의 귀가 큰 건 단지 코끼리라서가 아니라, 경청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탁월한 능력의 상징이다. “그들이 작은 게 아니라 우리가 큰 건지도 몰라.” “저 구름 위에서 누가 우리 같은 대화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라는 호튼의 생각은, 언제나 이질적 존재와 공존할 필요를 통통 튀는 각운으로 설파하는 닥터 수스 동화의 심장이다. 반면 주어진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외의 딴 짓, 즉각적 실용성이 없는 모든 행동을 죄다 ‘악’으로 싸잡는 캥거루의 근시안은 상상하지 않는 삶, 통찰하지 않는 삶을 대변한다. 다만 <호튼>에서 시점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물리적 강자인 정글 동물들이다. 어린이 동반 관객에게 ‘누군가 마을’ 주민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기를 청하는 것도 재미난 뒤풀이일 성싶다. 어린이들은 영화의 순순한 결말에 안심하겠지만, 어른들은 진실이 밝혀진다고 곧장 승복하는 것이 세상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 이야기는 너무 우울하므로, 때를 보아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게 좋겠다.
Tip/ 개봉 스크린의 98%에 더빙판을 배급한다는 <호튼>의 한국어 더빙은, 적극적인 의역을 노선으로 택했다. ‘상꼬맹이’, ‘허당’ 같은 유행어가 삽입되는가 하면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호튼의 숙적인 편협한 캥거루 역할의 연기를 한 최수민 성우는 배우 차태현의 어머니다.
닥터 수스, 누구신지? 동화작가 닥터 수스는 실제로 박사는 아니다. 다만 아들이 박사가 되길 부모가 열망했고 고향 지역신문에 박사 학위를 땄다는 오보가 실린 데서 필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테오도어 소이스 가이젤은 1904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 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맥주 양조업자였는데 금주령으로 인해 가계에 타격을 입었고 1차대전기 독일인에 대한 반감은 훗날 그의 동화가 증명하듯 소년으로 하여금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일을 숙고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스프링필드의 유년 풍경은 코끼리 호튼 이야기의 드로잉을 비롯해 <내가 멀베리가에서 그걸 본 걸 생각하면> <스니치스> 같은 작품에 드러나 있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다트무스 대학에 진학한 청년 테오도어는 잡지 <잭-오-랜턴> 편집장을 지냈으나 금주령 중 몰래 술 파티를 열다가 감투를 잃었고 어머니의 처녀적 성인 소이스(통상 ‘수스’로 발음)를 필명으로 쓰게 됐다. 아버지의 교육열에 떠밀려 영국 옥스퍼드대로 진학했으나 공부에 진력을 내던 차에 대신 예술가가 되라고 권하는 친구 헬렌 파머와 사랑에 빠져 40년을 부부로 살았다. 루스벨트의 강력한 지지자이기도 했던 닥터 수스는 2차대전이 발발하자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미국인을 비판하며 정치풍자만화에 집중했고 프랭크 카프라의 국방영화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좌파 애국주의자로서 미국의 이상을 확신하는 닥터 수스의 태도는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광고작업에서 처음 등장한 코끼리는 <호튼, 알을 품다>(1940), <호튼, 누군가의 소리를 듣다>(1954)를 거치며 관용과 배려의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아동문학 작가 및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닥터 수스의 명성을 굳힌 1957년작 <모자 속의 고양이>와 <그린치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훔쳤나> 이후 <초록 달걀과 햄>(1960), <물고기 한 마리 물고기 두 마리 빨간 물고기 파란 물고기>(1960)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 그의 작품은 어린이에게 필요한 단어를 갖고 운율을 맞춘 문체와 독창적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명성을 얻었다. 1991년 9월 병으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