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해외뉴스
[외신기자클럽] 터키 거장들의 영화가 없는 이스탄불

감독들에게 월드 프리미어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일부 영화제들을 성토하다

4월 중순이다. 나는 지금 이스탄불국제영화제에 와 있지만, 터키의 유명한 감독들의 최근 영화는 한편도 볼 수가 없다. 들고남은 있었지만 나는 지난 20년간 줄곧 이스탄불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스탄불국제영화제는 국제경선부문과 국내경선부문이 있는데, 터키영화의 영광된 역사를 생각할 때 대부분의 외국 기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국내경선부문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예전에는 기자들이 터키 국내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영화를 볼 수 있었거나, 아니면 공식 상영이 아닌 개인적 스크리닝에 참석해서 가장 최근의 터키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다섯명은 되는 이 나라의 이름난 감독들- 누리 빌게 세일란, 예심 우스타오글루, 제키 데미르쿠부즈, 레하 에르뎀, 세미 카플라노글루- 의 영화는 올해 영화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볼 수 있는 터키영화라곤 다른 곳에는 별로 초대될 일 없는 그저 그런 이류급 영화뿐이었다.

왜 그런 거장 감독들의 영화는 여기에 없는가? 바로 칸영화제가 마지막 초대 작품들을 선정하고 있는 중이며, 모두들 자신의 영화가 초청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두편의 터키영화만 칸영화제에 초대될지라도 터키영화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충분하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칸영화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싶은 우려와, 초대받지 못하면 “아직 영화가 후반작업 중이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핑계(영화감독들이 체면을 지키려고 잘 쓰는 핑곗거리)를 대려고, 어느 누구도 새 영화를 이스탄불영화제에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파리에 자리잡고 있는 자칭 국제영화제의 “조정자”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의 규정에는, 칸 같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전 본국이나 국내 경쟁부문에서의 상영을 금지하는 어떠한 항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유명세를 타고 더 많은 기삿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들은 감독들에게 월드 프리미어를 하도록 점점 더 많은 압력을 넣고 있다.

2006년 베니스영화제 위원장인 마르코 뮐러는 베니스의 경쟁부문에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월드 프리미어여야만 한다고 공표하기까지 했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공개적으로까지 얘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작은 나라 감독들은 그런 규칙을 기꺼이 따르고, 특히 칸을 상대로 할 때는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이 조용히 그 규칙을 준수한다(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할리우드다. 할리우드영화를 위해서라면 거대 국제영화제들은 기꺼이 자신들이 스스로 부과한 이 규칙을 깨버린다).

세계의 영화제 서킷은 영화제 숫자는 늘어만 가는데 충분히 질 좋은 영화들을 확보하지 못하고 점차 내려앉는 중이다. 그 와중에 규모가 큰 영화제들은 처음에 자신들이 과대하게 키워준 감독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영화제들은 이제 두세편의 영화를 만들고 나면 자신들이 ‘거장’이라고 불릴 것을 믿으며, 또 그런 오만함에 따라 행동하는 영화감독 세대와 마주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로서의 경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들 영화제들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많은 수의 감독들이 존재한다.

작은 규모의 지역영화제들은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지난 80년대와는 달리) 중요한 중국영화가 홍콩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부산영화제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중요한 한국영화의 프리미어 상영을 끌어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자들이 해당 영화제에 와서 그 지역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를 쓸 수 없다면, 더이상 그들은 그 영화제에 가지 않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내년에도 이스탄불영화제에 갈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나는 터키영화의 그해 라인업이 어떤가를 반드시 유심히 살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영화감독들은 최초에 자신들을 키워준 지역 관객과 영화제에 조금이라도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