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한국영화산업에서 왕따다. 제작, 투자, 배급 등 입장이 상충되는 부문들도 극장에 관한 사안이라면 쉽게 의견을 모은다. 영화의 생산자들이 극장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 것은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의 성장 과정에서 극장들이 별로 한 일 없이 과실만 따먹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작, 투자, 배급 부문이 나름의 리스크를 떠안고 사업을 펼쳐온 데 반해 극장은 이들이 만들어준 영화를 내걸면서 편하게 수익을 올렸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극장들은 관객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힘겹게 만든 영화를 1주일도 채 안 돼 내리기 일쑤였고, 몇 주일 더 걸어줄 테니 수익분배 비율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경시켜왔으며, 배급사와 협의도 없이 극장 회원 등을 대상으로 무료 초대권을 나눠주기도 했다.
때문에 이들은 지난 2월2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의 4대 멀티플렉스 업체를 상대로 의결한 시정명령을 가뭄의 단비처럼 받아들였다. 이 명령에서 공정위는 1) 배급사와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개봉 뒤 6일 이내에 상영을 종료해서는 안 된다 2) 상영기간 연장을 명분으로 배급사의 수익분배 비율을 애초 계약조건보다 불리하게 변경해서는 안 된다 3) 배급사와 사전협의 없이 무료 초대권을 발급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한 배급사 관계자의 말처럼 “공정위의 조사가 들어간 뒤부터 극장의 무리한 요구도 줄었다”. 하지만 4월 중순 한 멀티플레스 업체가 보낸 공문 한장은 이들의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 공문은 기본적으로 초대권, 수익분배 등의 문제에 관해 극장과 배급사간 합의를 만들자는 내용이었지만, 공문에 담긴 “양사 합의시 수익배분 비율이 변경이 가능하다는 문구 명시” 등의 구절은 극장쪽이 공정위 명령을 무시하고 반격을 시도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4월23일 영상투자자협의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인회의 등이 “멀티플렉스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해당 멀티플렉스 관계자의 해명에 따르면 사정은 좀 다르다. 그는 “이 공문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대한 후속조치”라면서 “공정위는 분배비율 조정이나 무료 초대권 발급 등에서 배급사와 협의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니 협의를 하자는 차원에서 보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극장이 배급사와 ‘협의’를 하고자 하는 이유가 “분배비율 조정 없이 상영을 연장해주겠다”거나 “무료 초대권을 발행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고자 하는 것은 아닐 터. 이후 전개될 극장과 영화 생산자들의 힘겨루기와 공정위의 입장이 궁금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