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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의 기록 <너를 보내는 숲>

자연 친화력 지수 ★★★★★ 멜로 지수 ☆ 눈물 날 확률 지수 ★★★★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에서 단순한 공간적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해왔던 나라현의 유현한 숲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너를 보내는 숲>에 이르러서는 등장인물을 넘어서는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내를 떠나보낸 한 남자와 아이를 잃은 한 여자와 그들을 품은 숲이라는 세 존재가 어우러진 1박2일의 기록이다. 그런데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가족과 연인의 관계에 머물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이번에는 완전한 타인들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변화와 더불어 혈연과 애정으로 맺어진 관계에선 내장되었던 연민의 정서가 <너를 보내는 숲>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분출되고 있다. 감독은 이제 자신을 치유하는 데서 나아가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한다.

아이를 잃고 남편과도 사이가 멀어진 마치코(오노 마치코)는 숲속에 자리잡은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는 33년 전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게키(우다 시게키)가 있다. 치매 증상이 있는 시게키에게 유일하고 분명한 감각은 ‘그리움’뿐이다. “나는 살아 있습니까?”라는 시게키의 질문은 그의 고통을 짐작하게 해준다. 아내가 죽은 1973년부터 33년간 써온 33권의 일기장은 시게키가 보낸 애도(哀悼)의 세월에 대한 증거이다. 상처 입은 내면은 소리없이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어서 마치코와 시게키는 곧 편안한 사이가 된다. 어느 날 마치코는 시게키를 아내의 무덤에 데려다주게 되는데, 자동차 고장으로 숲에서 길을 잃는다. 헤매고 다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미로 같은 숲에서 이들이 보낸 이틀은 놀라운 치유의 시간이다. 서로의 체온으로 어둠과 추위를 물리치고 맞이한 아침, 이들은 가슴속에서 차마 떠나보내지 못했던 아내와 아이를 놓아준다. 영화의 원제인 ‘모가리의 숲’에서 모가리는 ‘상(喪)이 끝난다’라는 어원을 갖는 단어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간 혹은 장소를 의미한다.

말이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거듭 되풀이되는 대사가 있다. “이곳에는 정해진 규칙 따윈 없어요.” 이 말은 마치코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요양원 주임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금을 긋고 규칙을 만들지만 숲에는 그런 경계 따윈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코와 시게키는 숲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치유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음”의 의미를 묻는 이 영화는 어렵지 않다. 대개 어려운 것들은 규칙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복잡하게 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규칙 따윈 없는” 이 영화가 어렵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 대신 숲과 사람이 어우러진 생명력 충만한 풍경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느끼게 해준다.

tip: 너무 자연스러운 치매 노인 연기를 보여준 우다 시게키는 사실 비전문 배우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오랜 친구이다. 영화 편집 작업을 해온 그는 첫 연기 도전을 위해 촬영 3개월 전부터 시골 요양원에 들어가 노인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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