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퀴즈 하나. 해충 먹은 나무가 있다. 어떻게 이 나무를 되살릴 수 있을까. 가지를 쳐낸다고, 밑동을 잘라낸다고 해결될 일인가. 그건 아닌 듯하다. 최선의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해충 먹은 나무를 뿌리 뽑아 방역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 묘목을 심는다. 오는 4월21일은 그런 점에서 ‘인터넷 식목일’이라고 불러도 됨 직하다. 금칙어 설정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던 불법 다운로드 파일을 대체할 신비한 묘목 심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모든 불법파일을 삭제 처리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합법파일을 심어넣는” 대규모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잠깐 귀기울여보시라.
4월16일 웹하드, P2P업체가 한자리에 모였다. 클럽하드, 엠파일, 파일노리, 존파일, 폴더플러스, 팝폴더, 파일몬, 클럽진, 와와디스크, 짱파일, 클럽포스, 위디스크, 지파일, 썬지오, 아이디스크, 제트파일, 이지드라이브 등 모두 17개 업체였다. 전날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칭)불법복제근절을 위한 단체연합회 준비위원회와 함께 ‘범콘텐츠산업연대 불법복제 근절을 위한 심포지엄 및 선포식’을 연 데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외려 불법복제 근절에 웹하드, P2P업체도 힘을 모으겠다는 취지로 나선 것이었다. 그동안 “불법복제의 온상”으로 지목되어왔던 주요 웹하드, P2P업체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합법적 콘텐츠 유통으로 수익 거두려는 웹하드, P2P업체의 변화
이날 웹하드, P2P업체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손잡고 디지털 영상콘텐츠 유통사업을 준비해왔던 씨네21i와 협력관계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들이 합의한 “합법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영화파일에 적정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영화 저작권자에게 정상적인 수익을 돌려주는 것”이다. “전체 시장점유율 80%에 달하는” 웹하드, P2P업체는 5월부터 “강력한 필터링 시스템을 적용한” 합법적인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영화 1편당 “300∼500원의 패킷 요금만을 결제하고 영화를 다운받던” 이용자들은 앞으로는 영화의 콘텐츠 비용(500∼2천원)이 추가된 1천∼2500원의 금액을 내야만 영화파일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된다.
영화파일 다운로드에 능한 이들이라면 이쯤에서 몇 가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첫째는 “영화파일의 불법적 유통을 사실상 방치해왔고” 이를 통해 적지 않은 수익을 거뒀던 웹하드, P2P업체의 변화다. 이번 협력관계 선언은 지난 2월12일 ‘영화 부가판권시장 확대를 위한 디지털 콘텐츠 유통사업 및 관련시스템 설명회’에서 웹하드, P2P업체가 불법복제 근절 의지를 밝힌 데 이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아이팝미디어의 임태형 대표는 “웹하드, P2P업체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갑자기 바뀔 것 같지 않다”면서도 “아직 이견이 있으나 공식적인 산업 영역 안에서 누릴 것을 누려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고 밝혔다. 아이서버의 양원호 대표도 “갈 길이 정해졌는데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 “영화를 시작으로 합법적인 사업 영역을 더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법파일 유통시 최대 3천만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끔” 한 저작권법 개정과 함께 불붙은 웹하드, P2P업체의 깜짝 변신에 따라 씨네21i의 영화 부가판권시장 정상화 계획도 차근차근 추진 중이다. 씨네21i의 김준범 이사는 “이번 협약에선 주로 웹하드 업체가 대상이었지만 조만간 P2P업체도 테이블로 이끌어낼 것”이라며 “과거에는 이들 업체가 인터넷상의 공간을 빌려주는 임대업을 통해 수익을 거둬들였지만 이제는 합법적인 형태의 콘텐츠 유통을 통해 새로운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씨네21i는 4월21일 동영상 다운로드 서비스 즐감 사이트(www.zlgam.com) 오픈과 함께 저작권자들을 위한 콘텐츠 관리 기능 등을 포함한 DCMS(Digital Contents Management System)도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70여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300여편의 영화파일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도 이와 함께 시작한다.
불법파일 통제의 핵심, 동영상 해시값 검색 기능
물론 아직 의문은 남아 있다. 합법적인 영화파일을 업로드한다고 해서 불법 다운로드 파일을 모두 교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씨네21i의 김준범 이사는 “이 작업은 결국 로스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불법파일들을 제거하고 합법파일로 교체하는 동안 또다시 불법파일들이 업로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할 수 없다면 즐감 서비스는 무용지물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구원투수 혹은 백신이 바로 동영상 해시값 검색 기능이다. 김 이사는 “파일이 생성되면서 갖게 되는 해시값은 일종의 지문이다. 이번에 우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동일한 해시값을 갖고 있는 해당 불법파일들을 모두 합법 저작권 파일로 인식해서 처리하고, 적정 콘텐츠 요금이 추가되어 과금된다”고 설명한다. 즉 불법파일들을 애용했다가는 패킷요금뿐만 아니라 콘텐츠 요금까지 내고서 화질 나쁜 영상들을 감상하는 등 벌금(?)을 물 수도 있다.
이 같은 해시값 검색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경우, 불법 업로드 파일의 “98%가량이” 통제 가능하다. 있으나 마나 했던 검색어 제한 등의 필터링 기능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씨네21i쪽은 “이번 협약에 따라 우리가 판권을 유통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웹하드, P2P 사업자의 패킷 정산시스템과 씨네21i의 디지털 판권 정산시스템이 완벽하게 연동된다”면서 “이에 따라 제작자 등 저작권자들도 DCMS의 온라인 사이트(dcms.cine21i.com)를 통해 다운로드가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씨네21i의 계획에 따르면, 5월부터는 “스트리밍 방식으로 HD급 이상의 영상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한 터라” 즐감 서비스는 더욱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이제 남은 것은 홀드백과 서비스 가격. 현재 씨네21i는 영화마다 다르고 업계와 추가협의가 필요하겠지만 “불법파일이 쏟아져 나오는 시점인” DVD, VHS 출시 시점을 전후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씨네21i의 김준범 이사는 “200만명 정도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의 경우 불법 다운로드 건수가 200만회 정도 된다. 이중 20% 정도만 즐감 서비스로 전환돼도 저작권자는 기존 부가판권과 맞먹는 수익을 가질 수 있다”면서 “몇몇 투자·배급사는 홀드백을 포함해 우리쪽에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사이트 오픈을 앞둔 상황에서 이용자에게는 아무래도 콘텐츠 가격이 얼마로 책정되느냐 하는 점이 가장 큰 관심일 것이다. 저작권자, 서비스업체 등의 의견을 모으는 중인데 아마 개봉 시점, 서비스 시기 등에 따라 차별화된 서비스 가격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즐감’이 한국영화산업의 영양 백신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불법 다운로드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씻겠다”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 양원호 협회장 인터뷰
4월16일 조인식에 참석한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 양원호 협회장은 짧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저작권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합법적인 콘텐츠 유통이라는 원칙에 동의하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웹하드, P2P업체들이 불법 다운로드의 온상으로 지목받는 상황을 이른 시간 내에 개선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현재 웹하드 업체 수는 어느 정도 되나. =문화체육관광부쪽 통계에 따르면 주요 업체는 대략 40개 정도다. 랭키닷컴 같은 사이트에 따르면 100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 회원사들은 모두 합의한 것인가. =두세곳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참여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몇개 업체들도 조만간 결정할 것으로 본다.
-그렇게 기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지난해 저작권법이 개정되면서 업체들 또한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를 결성하게 됐다. 다들 오해하고 있지만, 대부분 합법적인 콘텐츠 유통이라는 대의에 동의하고 있다. 실제 협회 약관에 관련 조항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저작권자들과 협력이 잘된다면 새로운 콘텐츠 유통 창구로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다만 이번에 참여 못한 일부 업체들은 계약 조건 등에 관한 조정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웹하드, P2P업체로서는 초기 수익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패킷 요금에 콘텐츠 비용이 추가되면 아무래도 가격저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 명확한데 과거 방식의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웹하드나 P2P를 사용하는 소비자는 지갑을 열지 않는 이들이 아니다. 디지털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해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적극적인 회원들이다. 가격의 경우 합리적인 선을 정한다면 수익 감소는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가장 이른 시간 내에 웹하드, P2P가 불법 다운로드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씻는 것이고, 다수의 불법 다운로더들에게 합법적 콘텐츠 소비자의 지위를 안겨주는 것이다.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 차원에서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재고를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