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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봄맞이 흥건한 특집

“침 좀 닦아라. 침을 질질 흘리면서 썼네.” 가끔 배우에 관한 개인적 호감이 넘쳐 연애편지를 방불케하는 기사를 쓰는 경우 농담삼아 하는 말이다. 그래서 고쳐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틀린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호 특집기사인 ‘<씨네21> 기자들의 추천 배우’는 말하자면 지면 곳곳에 침 흘린 자국이 가득한 기사다. 기자라는 작자들이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되나, 반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이왕 하는 커밍아웃이라면 과감해지자고 판단했다. 물론 얼마간 망설임도 있었다. 배우로서 성취도나 연기력만 놓고 보면 이렇게 쓰는 게 지나친 과장이 될 수 있겠다는 싶어서다. 하지만 배우라는 존재가 혹은 연기라는 예술이 객관적 수치로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다. 서열을 매기기 전에 그동안 몰랐던 배우들의 특별한 매력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영화잡지를 만들면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조화를 어디서 구하느냐는 점이다. 한편에선 기사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듣고 다른 한편에선 주관이 확실한 기사를 원한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씨네21>은 워낙 정론지로 이름을 얻었기에 객관성을 잃지 말라는 주문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영화평을 기대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반문하게 된다. 객관적인 영화평이라는 게 있긴 한가라고. 다툼이 있는 쌍방의 입장을 듣고 그걸 중계하는 기사라면 다르겠지만 영화평에서 객관성이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영화 본 사람의 주관적 입장을 배제하고 쓰는 글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글이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는 어렵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웬만한 객관적 정보는 직접 다 찾을 수 있는 시대엔 더 그렇다. 차라리 좋은 영화평은 반드시 주관적인 평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감상을 솔직히 드러내되 그걸 입증하기 위해 내놓는 증거와 예시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그것은 객관성을 가장하며 남의 말만 인용하거나 다수의 목소리에 의존하는 것과 다른 작업이다. <씨네21>에 요구되는 객관성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라고 믿는다.

영화잡지를 만드는 즐거움은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애정고백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사를 쓰는 누구나 영화를 보고 느낀 흥분과 감동을 널리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나누는 대화들이 흔히 그러하듯 영화 속에 등장한 옷, 음악, 음식, 풍경 등 모든 요소가 화제의 대상이 된다. 아마도 배우는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현실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이상적 인물 혹은 매력적인 배우를 발견하는 재미 덕에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자리잡았다. 그러므로 <씨네21> 기자들 각자가 영화에서 그런 인물을 발견해서 호들갑을 떤다고 기자의 본분에 어긋난 건 아닐 것이다. 더러 여러분의 취향에 맞지 않는 인물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기사를 읽어보면 글쓴이의 마음이 흔들린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침을 많이 흘려 흥건한 이번 특집이 독자 여러분의 눈길과 입맛 다 사로잡는 봄식단이 됐으면 싶다.

P.S. 다음호가 드디어 창간 13주년 기념호다. 창간을 맞아 지면 개편도 하고 영화제도 준비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호를 보시면 알 수 있다. 미처 인사를 전하지 못한 채 개편을 맞아 지면을 떠나는 필자들이 많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김애란·김현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함성호, ‘도마 위의 CF’의 부엌칼, ‘이철민의 미드나잇’의 이철민, ‘도라도라시장’의 석동연, ‘독자연상퀴즈’의 메가쑈킹 만화가 등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