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흉하다. 최근 부각된 어린이 대상 성범죄 사건 상당수가 재범, 누범자에 의해 저질러졌다. 어린이 납치의 65%는 성적 목적이라고도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올 가을부터 전자발찌 채운다지만 어린이 대상 성범죄만큼은 소급 적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반인권 논란이 따를 얘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왜? 전자팔찌는 사실상의 감금이자 이중처벌이고, 다른 범죄에도 확대·적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대책이 있지? 치안을 강화하고, 교화와 치료를 통해 범죄자를 사람 만드는 거? 추상심급이 너무 높다. 두돌도 안 된 딸을 동네 할아버지가 쓰다듬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고, 지하철에서 행여 어떤 아저씨가 무릎에 앉힐까봐 벌벌 떠는 나 같은 이에게는 말이다. 공권력의 관리·감독은 곧 인권침해라는 논리, 우리 공권력과 법이 신뢰를 못 받는 게 큰 이유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아 떠는 논리’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동선이 ‘기록’되는 게 곧 ‘감시’일까. 발찌나 팔찌를 찼는지 남이 바로 알 수는 없는데 그게 꼭 ‘통제’일까. 자기 통제력이 없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통제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인권침해’일까. 나는 지금 위험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혹시 우리 안의 ‘이중성’은 없는 걸까? 당장 한나라당은 어린이 대상 성범죄자를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의 자칭 ‘혜진이 예슬이 법’을 18대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전자팔찌는 반인권적이니 채우지 말고 아예 사형시키자는 현실 권력의 주장은 ‘또 호들갑이네’ 치부하다가, 진짜 그런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된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인 한비야씨가 들려준 얘기다. 이 조직의 구호요원들은 자신들을 인질로 잡은 납치범들에게도 먹을 것을 준다. 그런 그들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뿐더러 세계 구호단체들에 즉각 인적 사항을 회람시키는 범죄자는 어린이 대상 성범죄자들이다. 한씨는 이를 ‘제로 톨러런스’라고 말했다. 일체의 관용을 허용하지 않는 범죄라는 얘기다. 동의한다. 인권 법학자들 사이에서 형량의 대용으로 전자팔찌를 선택해보자는 얘기도 있었다. 나는 예방적, 응징적 차원도 보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가 이토록 ‘관대하게’ 취급되는 나라에서, 정녕 지켜야 할 근본적이고 절대 불변한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의 인권의식을 재부팅해봤으면 좋겠다. 과잉처벌 하자는 게 아니다. 딱 맞는 처벌과 예방을 분명하고도 긴급하게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