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느끼는 아버지란 존재 너머에는 그의 자식들이 만나지 못한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가장으로서 짊어지는 책임감은 가족이란 소규모 사회를 끌고 갈 권위를 필요로 하고, 그 권위는 아버지를 베일에 싸인 존재로 포장한다.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가정에서 2세들은 아버지에 대해 깊이 알려 하지 않으며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는 감정의 교류가 끊긴 상징적인 존재가 되곤 한다. 물론 최근 가장의 역할과 위상이 바뀐 게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깨트릴 수 없는, 깨져서도 안 되는 신화와도 같다.
<재미난 집>의 작가 앨리슨 벡델의 아버지 역시 그런 ‘보편적’인 아버지상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부담스러워 일찌감치 마음의 문을 닫는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알면 대경실색할 비밀이 있었으니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몇번의 망설임 끝에 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그녀. 그러나 끔찍하게 무거운 침묵이나 모멸에 가까운 경악 대신 돌아온 피드백은 아버지도 동성애자라는 충격적 고백이다. 그것도 자신보다 이른 14살 때부터.
<재미난 집>은 커밍아웃과 뒤이은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 다시 아버지를 알아가는 앨리슨 백델의 회고록이다. 단편으로만 존재하고 있던 아버지와의 교감을 능수능란한 만화언어로 차곡차곡 들추어내면서 사실은 그녀의 정신세계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던 아버지를 새롭게 기억해낸다.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 심미주의자와 실용주의자, 여성스러운 남자와 선머슴 같은 여자와의 차이처럼 그녀와 철저히 다르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사실은 묘하게 닮았다는 사실. 그리고 문득문득 아버지가 억누르고 감췄던 비밀을 드러내고 싶어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그녀를 있게 한 교감의 퍼즐조각들을 하나로 맞춰간다. 퍼즐을 완성하는 순간 그녀에게 아버지는 이카루스가 향하고자 했던 태양이 아니라 이카루스를 받아줬던 바다가 된다.
벡델은 자칫 무거워지거나 자조적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고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거기에는 그녀의 빛나는 만화적 재능도 한몫을 한다. 세필로 그린 듯한 구불구불한 선과 편안한 칸 배치,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는 유머감각은 어쩌면 거북할 수 있는 그녀 가족의 이야기를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든다. 벡델은 이 작품을 내기 전 20년 동안 50여개의 신문에 동시 게재되고 9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20세기 최고의 히트작’ 목록에도 올라 있는 <주목해야 할 레즈들>로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은 만화가다. <재미난 집>은 잊었던 가족의 유대감과 소중함을 재발견할 수 있는 훌륭한 문학작품인 동시에, 후루룩 국수 삼키듯이 보던 여느 만화와 달리 꼭꼭 씹어 먹는 듯 ‘읽는 즐거움’을 주는 색다른 만화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