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오는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32번째는 배우 황정순이 기증한 소품, 장신구, 대본입니다.
황정순은 1940년 극단 청춘좌 활동을 시작으로 반세기 동안 무대, 스크린,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역사의 질곡이 녹아 있는 여성상을 표현했다. <첫사랑>(김기, 1965), <봄은 다시 오려나>(이만홍, 1958>, <인생차압>(유현목, 1959에서 개성있는 연기로 주목을 받았고 <육체의 고백>(조긍하, 1964)에서는 양공주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목걸이와 뒷머리에 붙이는 ‘후카시’ 가발, 강한 이미지의 뿔테 안경은 350여편의 필모그래피에 걸맞은 연기의 폭을 짐작게 한다. <마부>(강대진, 1961), <김약국의 딸들>(유현목, 1963) 등에서 전후 황폐한 현실을 헤쳐가는 강인하고 따뜻한 소시민의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70년대 ‘팔도강산’ 연작에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완충과 중재의 역할을 하는 부드러운 어머니였다. 가난한 어머니 역할을 위해 한복과 함께했던 목도리와 브로치, 둥글고 큰 안경과 쪽 진 뒷머리채는 황정순의 영화 속 어머니 이미지와 겹쳐진다. 또한 큼지막한 분갑과 파운데이션은 당시 여배우의 분장실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4∼5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도 촬영 중 말에서 떨어져도 벌떡 일어나 연기를 계속했다는 에피소드처럼 혼신을 다했던 연기자로서의 면모는 꼼꼼히 줄을 치고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는 <소문난 잔치>(고영남, 1970)의 대본과 <청등홍등>(이형표, 1968)의 녹음대본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