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A. 미치너는 학자였고 편집자였고 해군이었고 작가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으로 복무하던 때로, 나이는 마흔에 가까웠다. 남태평양에서의 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첫 소설 <남태평양 이야기>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이후 영화 <남태평양>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복무한 경험을 <도곡리 다리>라는 책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 역시 영화화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구해볼 수 있는 그의 소설은 <소설>뿐이지만,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 두편의 영화는 미치너의 이름을 낯설지만은 않게 해준다.
<작가는 왜 쓰는가>는 작가 지망생들을 가르치던 노년의 미치너가 자신의 작가 수업과정을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는가를 회상하면서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순수한 문학적 이상에 엄격하게 설교를 늘어놓는 책이 아니라는 데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연애소설을 써 사후 40년이 지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그레이스 리빙스턴 힐(64종에 이르는 그녀의 책은 총 2400만부가 넘게 팔렸다)이나 앤 라이스가 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는 헤밍웨이, 톨스토이의 이야기와 나란히 거론되고 있다. 작법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신념’이라는 짧은 글에 있는데, 소설을 쓰면서 미치너 자신이 늘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보이는 유용한 대목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다른 작가들에 대한 미치너의 의견을 담은 2장이다. 2장에서 미치너는 다른 작가들의 천재를 동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때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비판하며, 그에 얽힌 갖가지 사건, 사고를 글에 엮어냈다. 1만 단어를 써달라는 <라이프>의 청탁을 받은 헤밍웨이가 12만 단어짜리 원고를 보내자, 원고의 여백에 편집자가 ‘이 개자식’ 운운하는 분노의 낙서를 했다는 이야기. 한국에서 복무 중이던 미치너가 출간 전인 <노인과 바다>의 교정쇄를 받아 읽고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던 이야기.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로서 다른 많은 작가들의 책을 사랑했던 그의 경험과 생각은 그가 “왜” 작가가 되었는지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해준다.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미치너의 충고 중 하나는 기억해둘 만하다. “문학적 가르침을 받아들여 결실을 맺을 무렵의 결정적 순간에 도달한 문학청년에게는 반드시 어떤 결정적인 책이 찾아온다.” 그 책은 걸작일 수도 있고 무명의 책일 수도 있다. 문학적 개안의 순간을 맞을 때까지 다양한 글을 읽으며 밑천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