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스톡홀름 교외에 사는 소년 차스키(사무엘 하우스)는 엄마(알렉산드라 라파포트)가 지중해에서 보낸 휴가의 열매로 태어난 바캉스 베이비. 문어잡이 잠수부 친아빠와 멋지게 조우하기 위해 잠수연습에 몰두하고, 괴롭힘당하는 약한 친구를 돕고, 첫사랑을 경험하며 차스키의 여덟살은 바쁘게 흘러간다. 한편 록밴드 멤버인 말괄량이 엄마는 차스키네 집 셋방살이를 시작한 성실한 경찰관 욜란과 베이스 주자 애인 사이에서 망설인다. 마침내 엄마를 졸라 그리스 여행에 나선 차스키. 그리워하던 아빠와 예상과는 다른 만남을 갖는다.■ Review 친구들과는 영판 다른 이국적인 이름. 미혼모 엄마와 거울 한구석에 붙어 있는 낡은 사진으로만 얼굴을 익힌 아빠. <차스키 차스키>는 기본 전제만 슬쩍 보면, 한 사랑스런 꼬마의 외로운 사연으로 감성의 연한 부분을 건드릴 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아빠 없는 하늘 아래’나 ‘아빠 찾아 삼만리’식의 센티멘털리즘은 약에 쓰려야 없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일부러 눈물을 참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마음 통하는 친구와 귀여운 첫사랑, 아들의 돌봄이 필요한 쾌활한 엄마에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안아올려 푸근한 등을 빌려주는 경찰관 아저씨까지 있는 차스키는 99% 행복하다. 이따금 “아빠랑 사랑에 대해 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고개를 들 뿐이다. 만날 기약도 없는 친아버지의 존재는 차스키의 유년에 드리운 그늘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비밀스럽고 달콤한 희망이다. <차스키와 아빠> <차스키와 엄마>라는 두편의 연작 아동소설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엘라 렘하겐 감독은 이 가족영화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차스키와 엄마, 아빠의 재회를 허락한다. 그러나 아빠와 차스키가 함께 문어를 잡고, 엄마와 아빠가 한밤의 카페에서 소식을 나눌 뿐 렘하겐 감독은 결코 세 식구의 으스러지는 포옹을 보여주지 않는다. <차스키 차스키>에서는 부모 자식의 끈끈한 사랑도 남녀의 연애도 일종의 온화한 우정의 형태로 수렴된다.
영화 속 어른들은, “우리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어 가족이 됐단다. 언젠가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갈 테지만, 그때까지 잘 지내보자꾸나” 하는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아이들은 어른들도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안다. 이처럼 <차스키 차스키>의 세상에서는 사랑을 느끼면 대뜸 분홍색 하트무늬를 그려 표현하는 담백한 감성의 어른과 아이들이 또래처럼 충고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말투는 얌전하지만 <차스키 차스키>가 들려주는 가족상과 삶의 방식은 은근히 대담하다. 엘라 렘하겐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인 <차스키 차스키>는 제50회 베를린 어린이영화제의 오프닝작으로 선정돼 호평받았으며, 본국 스웨덴에서는 4개월이 넘게 롱런하며 스웨덴의 오스카 격인 황금벌레상의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김혜리 verme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