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피겨 수집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지만 정보가 없어 망설였던 사람, 영화 피겨를 모으고 있지만 당최 자신의 소장품이 맘에 안 드는 사람, 피겨를 꽤 모아서 이제는 희소성있는 피겨를 갖고 싶지만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지 막막한 사람, 3일이 멀다 하고 ‘지름신’의 꾐에 넘어가 파산 직전인 사람, 그리고 앞의 기사를 보고 영화 피겨에 대해 갑자기 관심이 생긴 사람들까지 다 모이시라. 전무후무할 친절한 ‘단계별 수집백서’를 준비했다. 차근차근 7단계까지 숙지하고 나면 수집을 경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바른 습관을 터득할 뿐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피겨를 통해 ‘영원히 간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LEVEL 1: ‘피겨’의 정의, 정확히 알고 넘어가자
피겨. 영어로 figure. 주로 어른들이 모으는 조립과 도색이 완성된 완구를 총칭하는 이 단어는 일반인에게 여전히 생소하다. ‘피겨’란 단어를 듣자마자 은반 위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는 피겨 요정 김연아를 떠올리는 게 당연지사. 사실 피겨를 인형이나 일반 완구류와 명확하게 구분짓기란 애매하다. 미국에서 ‘캐릭터를 표현한 모형’을 지칭하던 단어인 ‘figure’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성인을 타깃으로 한 캐릭터 완구류’를 정의하는 말로 변형된 것일 뿐 딱히 ‘피겨’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영미권에서도 ‘toy’에 속하지 않는 완구를 지칭하는 말로 쓰긴 하지만 큰 범주에서 캐릭터를 표현한 모든 인형, 완구류는 재질과 가격, 타깃에 상관없이 피겨라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피규어’란 발음으로 표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식 발음 ‘휘규어’(フィギア)에서 온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피겨’가 정확하나 이 또한 ‘피겨 스케이팅’과 구분되지 않아 수집가들은 통상 ‘피규어’라 발음하고 표기한다. 그 정의에서부터 발음, 표기가 명확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은 아직 피겨 수집이 우리나라에서 낯선 문화라는 방증이다. 또한 피겨는 ‘오타쿠’나 별종이 모으는 것이라는 편견의 시선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생활과 문화 수준의 향상으로 어릴 때부터 영화와 만화를 즐긴 세대가 고스란히 구매력이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피겨 수집문화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LEVEL 2: 영화 피겨의 종류를 알고 모아라
피겨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피겨의 종류 역시 그 범주가 애매모호하다. 구분짓는 기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 영화 피겨는 피겨가 묘사하는 대상 중 하나이며 만화 피겨와 함께 피겨시장의 양대산맥이다. 영화 피겨는 그 형태와 재질, 크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종류별로 고루 모아도 되지만 한 종류만 집중해서 모으는 방식이 정신건강과 가계경제에 유익하다. 노파심에 드리는 충고! 어떤 종류든 한 우물만 파려 해도 평생 그 끝을 보기 힘들 것이다.
①액션피겨: 액션피겨는 관절을 움직일 수 있는 피겨다. 크기에 따라 3.75인치, 6인치, 12인치, 18인치로 구분하며 국내에서는 12인치 제품군이 인기가 많다. 피겨를 배우 삼아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
②스테추/디오라마: 움직이지 않지만 정밀하게 캐릭터나 한 장면을 묘사한 피겨. 디테일이 압도적이며 대부분 수십만원이 넘는 고가를 자랑한다. 캐릭터를 묘사한 건 스테추, 스크린으로 보는 듯 생생한 장면을 연출한 건 디오라마라고 부른다.
③소프비: ‘소프트비닐’이라는 합성플라스틱으로 만든 피겨를 줄여서 ‘소프비’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재질의 느낌처럼 세세한 묘사는 생략하고 면과 색의 묘미를 살린다. 디자인적 요소가 강해 ‘아트 토이’라고도 부른다.
④큐브릭: 정육면체(cube)와 벽돌 모양의 덩어리(brick)의 합성어로 일본의 메디콤토이에서 제작한 레고처럼 생긴 완구. 호러영화가 나올 때마다 그 주인공을 귀여운 2등신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최근의 콜레보레이션은 <쏘우>. 끔찍하게 귀여운 직쏘를 만날 수 있다.
⑤초합금: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온 로봇들은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금속 재질로 표현한다. 마징가Z, 그랜다이저, 철인28호 등의 일본 거대 로봇이 주류다. 조립과 도색이 완료되어 있기 때문에 프라모델과는 구분된다.
LEVEL 3: 영화 피겨를 만드는 브랜드에 대해 분석하자
세계적으로 피겨의 강국은 미국과 일본, 홍콩 등이다(대부분 중국 OEM이긴 하지만). 미국은 트랜스포머를 만든 하스브로, 스폰 시리즈의 맥팔레인, 디오라마로 유명한 사이드쇼 등이 대표적이며, 일본은 메디콤토이, 다카라, 고토부키야 등이 유수의 브랜드다. 그 밖에 홍콩의 핫토이, 프랑스의 어태커스 등이 ‘지름신’과의 싸움을 끊임없이 펼치게 하는 대표적 제작사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제작사마다 고유의 특징과 정체성이 있어 그런 점을 숙지해두면 효과적인 수집에 도움이 된다는 것. 이를테면 정밀한 표현을 좋아한다면 맥팔레인이나 사이드쇼, 아기자기한 캐릭터성이 좋다면 메디콤토이, 부담없이 갖고 놀길 원한다면 하스브로, 풍부한 루즈(의상이나 소품류)에 끌린다면 핫토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수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한 캐릭터를 제작사별로 수집한 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묘사를 발견하는 것도 수집 생활의 백미다.
LEVEL 4: 피겨에만 통용되는 ‘가격의 법칙’에 대해 숙지하라
뭐니뭐니해도 수집에 있어 가격은 애증의 존재다. 천원대, 만원대의 저렴한 제품들도 많지만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는 제품은 10만원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수집가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신발보다 피겨가 몸에 걸치는 옷이나 신발이 더 비싼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그런 비싼 피겨를 사는 건? 피겨만큼 ‘지름신’이 왕성히 활동하는 분야도 없기 때문이다. 피겨는 그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희소성이 가격을 결정짓는 절대요소다. 1천개가 생산된 질 좋은 피겨보다 100개가 생산된 밋밋한 피겨의 가격이 더 비싼 이유도 그 때문. “지금 사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라는 조바심 역시 피겨의 가격을 올리는 큰 원인이다. 가능하면 초반엔 저렴한 양산제품 위주로 모으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희소성있는 피겨로 수집 노선을 바꿔도 좋다. 단 우표나 화폐수집처럼 ‘프리미엄’ 팍팍 올려서 되팔고 싶다면 절대 포장을 뜯지 말 것! 일단 공기와 맞닿은 피겨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
LEVEL 5: 어디에서 사는 게 효과적일지 연구하자
우리나라에서 피겨를 살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다. 직접 가서 살 수 있는 매장은 서울 동대문, 용산 일대, 국제전자센터 외에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온라인숍을 통해 피겨를 구매하는데 현재 100개 남짓한 숍이 운영 중이다. 그런데 수집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보면 봉착하게 되는 문제! 정말 갖고 싶은 피겨가 생겼는데 국내에서는 파는 곳을 발견할 수 없을 때다. 아직 피겨의 대부분이 해외 제품이다 보니 국내의 유통사들이 모든 피겨를 수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외국의 피겨숍이 대부분 해외 배송을 하기 때문에 국제운송료만 추가하면 구매에 어려움은 없다. 미국 이베이나 일본 야후옥션 같은 경매 사이트를 통하면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므로 효과적이다. 단 경매 사이트별로 다른 특징을 알아두는 게 좋다. 이베이는 해외 배송이 대부분이지만 야후옥션은 판매자들이 대부분 해외 배송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구매대행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 수수료에 운송비까지 더해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발생한다. 같은 피겨가 두곳에 다 있다면 이베이에서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말씀!
LEVEL 6: 피겨에도 명품이 있다
수백만원이 넘는 명품핸드백이 있는 것처럼 수백만원짜리 명품피겨도 있다. 명품피겨라고 특별히 좋은 재질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장인의 작품들이 그것. 손수 원형을 제작하고 채색작업에 자필사인, 인증서까지 들어가는 피겨는 예술작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쉽게 구입할 엄두가 안 나지만 공기를 차단하는 진공장식장에 두고두고 보관하면 가치는 꾸준히 상승하게 마련. 가격을 매길 수 없는 피겨도 존재한다. 국내에도 이소룡 시리즈를 제작한 어니, <올드보이> 오대수 피겨를 만든 고준, <스타워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만든 반세이 등의 원형사가 그만한 작품성과 희귀성을 인정받고 있다. 멋진 피겨를 가릴 줄 아는 심미안도 피겨 수집에서 꼭 필요하다.
LEVEL 7: 열성적인 동호회 활동은 필수!
동호회가 활성화되지 않은 취미가 있겠냐마는 피겨 수집만큼 동호회 활동이 필요한 취미도 없다. 아직 널리 대중화된 취미가 아니기 때문에 알짜배기 정보를 미디어나 출판물 등을 통해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동호회는 그곳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노하우를 고스란히 얻을 수 있는 곳. 피겨 수집 동호회는 다른 취미보다 유독 회원들간에 끈끈한 유대감이 존재하게 마련인데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마이너한 취미라는 폐쇄성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급문화를 즐긴다는 자부심이 동시에 존재한다. 때문에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눈팅’만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소장한 피겨의 사진을 찍어 자랑도 하고 애장 피겨를 들고 모이는 정기모임에 나가면 더 윤택한 수집 생활을 즐길지니. 국내의 대표적 피겨 동호회로는 아이피규어(www.ifigure.co.kr), 카마로 월드(http://camaro.co.kr), M.F.M(http://cafe.naver.com/milifigur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