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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이렇게 오지랖 넓은 슈퍼맨이라니
이영진 사진 이혜정 2008-03-20

박준형 감독의 <자전거소동>

민창은 자전거를 훔치다 주인에게 걸려 도주 중이다. 친구 철이에게 2만원을 받고 자전거를 기필코 훔쳐주겠다고 약속한 민창은 도시에 널린 무방비 자전거를 손에 넣으려고 하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한편 철이의 누나 잔디는 수술을 앞둔 어머니를 위해 MP3 플레이어를 드리기로 마음먹고 물물교환을 위해 한 남자를 만나지만 눈앞에서 지갑을 도둑맞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슈퍼맨의 등장. 그런데 이 슈퍼맨은 좀 이상하다. 허름한 체육복 차림에 머리 더부룩한 행색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그는 울상이 된 잔디만 돕는 게 아니다. 잔디를 만났다가 갑자기 흑심을 품고 거액이 든 지갑을 들고 튄 남자를 돕기도 하고, 장물을 손에 넣은 민창과 철이가 ‘도둑놈’으로 손가락질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선과 악을 나누어 벌하지 않고 모든 이들을 감싸는 이 오지랖 넓은 슈퍼맨이 도대체 가능한 시추에이션이냐고? 궁금하다면 KT&G 상상마당(www.sangsangmadang.com/movie) 우수작 상영관에서 박준형 감독의 <자전거소동>을 직접 쳐보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면 박준형이라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연출과 주연을 겸한 영화 <어느날>에서 육교 기둥을 맨손으로 자유롭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애크러배틱 액션의 쾌감을 선사하던 그를 기억하는지. 4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어느날>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그 이전에는 맨몸 액션 영상들을 인터넷상에 올려 ‘한국형 스파이더 맨’으로 불리기도 했다. <자전거소동>은 1999년 “청소년들을 위한 선한 액션영화”를 만들겠다는 뜻을 품은 이후 내놓은 26번째 영화(27번째 영화 <INTIMIDATION>도 상상마당에서 만날 수 있다). 상영시간이 47분10초에 달하는 중편이다. “원래는 짧은 이야기였어요. 누구나 다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면 훔쳐간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잖아요. 그런데 자전거를 훔쳐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러면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것을 훔치는 일 자체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었죠.” 영화의 마지막, 민창과 철이가 펴보는 ‘행운의 편지’가 애초 이야기의 얼개였고, 짤막한 공익광고 형식으로 묶어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뚱뚱한 이야기가 됐을까. “전에는 주로 주인공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짧게 가자고 했는데 이번에는 다양한 캐릭터를 다뤄보고 싶기도 한 거예요. 그러다 주요 인물이 10명을 넘어서니까 그만….”

“스케이드보드로 스테디캠을 대신하던” 박준형 감독의 ‘나홀로 자급형’ 작업 방식은 여전하다. 아니, 최근 몇년 동안 더욱 진보했다. 참고로 <자전거소동>에 나오는 모든 음악은 그가 만들어 넣은 것이다. “이전에는 비영리 목적으로는 음원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2005년에 저작권법이 바뀌면서 그것도 불가능해졌어요. 그래서 그냥 부천영상제에서 받은 상금을 털어서 신시사이저를 무작정 샀죠. 남의 것을 빌려 쓸 수 없으니 직접 만드는 수밖에 더 있나요.” 애니메이션을 왜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그 이유 또한 열정 가득이다. “몇년 전에 캠코더 관리를 잘못해서 습기가 찼거든요. 그래서 고장이 났는데 작품 활동을 한동안 못하게 되니까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그림 그려서 디지털카메라로 500, 600장 찍어서 만들었죠.” 가구, 유리공장 등에서도 일하고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만원짜리 초저예산영화”부터 “800만원짜리 블록버스터”까지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든 그의 다음 작품은 <더 로그>(The Log). “우주선을 타고 모험을 떠난 청소년들이 외계인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는다”는 내용의 SF다. 본인이 좋아하는 <백 투더 퓨처>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며 쓴 이야기라고. 예상 제작비는 7만원 정도. 온수쪽에 있는 밭을 화성 로케이션 장소로 봐둔 상태다.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제공할 개런티는 하루 바나나 한개와 김밥 2줄이 전부이지만, 열정을 함께 나눌 이들은 언제나 연락 바란다는 박준형 감독.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실명 상태지만 그의 촉수는 세상 누구의 그것보다도 더 부지런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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