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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부세미] 대체 왜 그딴 식으로 생긴 거야?
최하나 2008-03-20

<인터뷰>의 배우 겸 감독 스티브 부세미

“그냥 웃기게 생겼어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_<파고> “당신, 맛이 좀 가보이는데. 무슨 약 했어요?”_<판타스틱 소녀백서> “대체 왜 그딴 식으로 생긴 거야?”_<인터뷰>

음지식물인 양 핏기없는 얼굴, 포도알처럼 톡 튀어나온 눈, 구멍가게 선반처럼 무질서한 뻐드렁니. 누구나 한번 보면 이 남자를 잊을 수 없다. 스티브 부세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뜩하고, 또 한편으론 처연해 보이는 인상의 그를 관객은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철지난 잡동사니에 집착하는 사회부적응 중년(<판타스틱 소녀백서>), 죽도록 구박만 받다가 커피 깡통에 담겨 생을 마감하는 루저(<위대한 레보스키>) 혹은 목재 분쇄기에 통째로 갈려버리는 어수룩한 킬러(<파고>). 화려한 전적에 비해 비교적 정상적인 정치부 기자로 등장하는 <인터뷰>에서조차 부세미의 외모를 향한 타박의 릴레이는 여지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섣불리 동정의 시선을 던질 필요는 없다. <인터뷰>는 그의 출연작인 동시에 연출작이니까. 짐작건대 부세미는 십중팔구 카메라가 멈춘 뒤 한바탕 낄낄댔을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뷰는 나를 ‘정크 메일의 영화적인 등가물’(cinematic equivalent of junk mail)로 표현한 거다. 정확히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끝내주게 들리잖아?”

<타임스>가 “섬뜩하고 교활하며 비극적인 광대들의 시장을 매점했다”고 선언했을 만큼 루저와 사이코패스, 킬러를 단골로 연기해온 스티브 부세미는 사실, 배우가 되기 전 공공의 적이 아닌 친구였다. 30년간 환경미화원으로 일해온 아버지의 강한 권유에 떠밀려 뉴욕시 소방관이 된 그는 낮에는 열심히 불을 끄고, 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불을 지피는 이중생활을 4년 동안이나 지속했다. 마크 분 주니어와 함께한 듀오가 <뉴욕타임스>에 “이스트빌리지의 지적인 남성 코미디팀”으로 소개되고 입소문을 타면서 스크린 진출 기회가 왔다. 1986년 에이즈로 죽어가는 게이 뮤지션을 연기한 <최후의 섬광>으로 데뷔, 코미디언 시절 그의 팬이었던 짐 자무시의 러브콜을 받아 <미스터리 트레인>을 찍었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생의 동반자가 될 코언 형제와 <밀러스 크로싱>으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부세미의 커리어를 일순간 도약시킨 것은 1992년 <저수지의 개들>이었다. 본래 닐 사이먼에게 전달되기로 한 오디션 테이프가 캐스팅 디렉터의 실수로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도착했고, 이 운명적인 실수는 부세미 일생일대의 행운이 됐다. 팁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가진 ‘미스터 핑크’는 그렇게, 농담처럼 도착했다.

“단지 사회가 강요한다고 해서 팁을 주진 않는다는 거지. 물론 정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줄 수도 있어. 정말로 노력을 한다면, 뭔가 덤을 얹어줄 수도 있지. 하지만 자동적으로 팁을 줘야 한다는 건 개 같은 소리야. 여기 봐, 내가 커피를 주문했어. 그리고 죽어라 눌러붙어 있었잖아. 근데 저 여자는 그동안 내 잔을 딱 세번 채워줬다고.”_<저수지의 개들>

코언 형제, 짐 자무시, 쿠엔틴 타란티노, 알렉산더 록웰 등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인디영화의 아이콘으로 부각되자, 이내 <콘에어> <아마겟돈> <아일랜드>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평면적인 플롯에 활기를 불어넣을 특효 처방으로 부세미를 기용했다. 짐 자무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갑자기 할리우드에 스티브 부세미 세금이라는 것이 생긴 양” 모두가 그를 원했지만, 부세미의 시선은 순조롭게 쌓여가는 필모의 산더미를 넘어 연출을 향했다. <파고>를 찍은 바로 그해 <트리스 라운지>로 감독 데뷔전을 치렀고, <애니멀 팩토리> <론섬 짐> <인터뷰> 등 장편과 <오즈> <소프라노스> 등의 TV시리즈를 바지런히 쏟아냈다. 특히 토니 소프라노의 사촌으로 출연하는 동시에 메가폰을 잡은 <소프라노스>는 2001년과 2004년, 각각 배우와 감독으로 그의 이름을 에미상 후보에 올렸다. 스티브 부세미가 습관처럼 지목하는 롤모델은 배우로 출발해 결국엔 불멸의 감독이 된 존 카사베츠다.

“다른 사람들의 영화에서 사이코패스를 연기해 괜찮은 돈을 벌어들이는 덕분에, 내가 연출하는 영화로 생계를 걱정해야 할 일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행운아다.”

치열한 비극에 기묘한 유머를 더하고, 지독한 희극에 아릿한 슬픔을 불어넣는 부세미는 나타나는 순간 시선을 장악하는 스크린의 연금술사다. 그리고 어쩌면, 그만큼의 잠재력을 가진 연출자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부세미의 또 다른 도전이 성공을 거두건 거두지 않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지독한 루저이건 범죄자이건 사이코패스건 간에 상관없이 결국은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확인해왔으니. 심지어 그토록 안타까운 외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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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GA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