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은 나치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신물이 나도록 듣는다. 황금시간대에 텔레비전을 틀면 나치의 만행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가 끊임없이 방영된다. 그렇다면 독일사회는 이런 계몽작업의 효과만 믿고 파시즘은 발디딜 틈이 없을 거라 안심해도 괜찮은 것일까? 모튼 류의 원작을 각색한 신성 데니스 겐젤의 신작 <디 벨레>(Die Welle)는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는 68세대 이후 반권위주의적, 자유주의적 교육 세례를 받고 자란 독일의 청소년들도 파시즘적 집단 최면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은 독일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다. 주인공 벵어(위르겐 포겔)는 청년 시절 좌파대안운동권에서 빈집 점거를 한 경력이 있다. 그만큼 의식도 있고 학생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반권위주의적 교사다. 그런 그가 ‘독재’를 주제로 심화학습을 하려하자 학생들은 “어휴, 지겨워. 차라리 미국 대통령 부시를 다루지요”라며 거부한다. 이에 자극받은 벵어는 학생들과 게임을 시작한다. 독재가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모두가 참여하는 실험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실험의 모토는 ‘규율을 통한 권력, 공동체를 위한 권력, 행동을 통한 권력’.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흰색 셔츠로 통일해 입은 뒤 프로젝트의 명칭을 물결이란 뜻의 ‘디 벨레’라고 붙인다. 실험이 계속되자 아이들은 정말로 집단 도취에 빠져들고 벵어마저 권력에 도취되며 실험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디 벨레>는 심지어 아웃사이더, 외국인, 저소득층 자녀들마저 파시즘적 공동체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극우문제 전문가 베노 하페네거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우리는 사회적으로 비교적 불안정한 상황에서 산다. 그래서 이들도 전체주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독은 부모들의 자유주의적인 교육법에도 의문을 던진다. 영화에서 한 엄마가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고 하자 여학생은 “날 그렇게 키웠으면 차라리 나을 뻔했어. 키울 때 약간 엄격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라고 대꾸한다. 73년생으로 68세대 부모 밑에서 자란 겐젤 감독은 이것이 실제 자신이 부모에게 했던 말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대사를 통해 그는 68세대 이후의 부모들이 권위적 어른이기보다 친구처럼 구는 것이 오히려 자식들을 전체주의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그건 사실일까? 이상향을 추구하는 반권위적 교육이 오히려 전체주의적 유혹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영혼들을 키우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