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정면에 멈춰 있던 버스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 똑같은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정지된 풍경처럼 일렬로 서 있다. 이스라엘 어느 지방 도시의 초청으로 방문했건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황량하고 고요한 벌판뿐이다. 환대받지 못한 자들의 어색하고 불안해진 눈빛과 자세가 처량하다. 직접 목적지로 찾아가기로 결심한 남자들은 버스에 오른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경찰 관현악단의 이스라엘 방문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래의 목적지는 ‘페타 티크바’지만, 영어 발음을 잘못 알아들은 탓에 ‘벳 하티크바’라는 사막 같은 마을에 내린다. 다시 돌아갈 버스는 끊기고 모텔도 없는 이곳에서 이들 눈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식당. 다행스럽게도 집시 분위기를 풍기는 여주인 디나와 조금은 멍해 보이는 두 남자의 배려 덕에 밴드 멤버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낯선 이들과의 우연한 하룻밤에 펼쳐지는 잔잔한 추억거리들이 영화의 중심이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만남. 정치적인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밴드 비지트: 어느 조용한 악단의 방문>은 인물들의 국가색을 최소화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낯선 타인들의 소통 이야기로 보편화시킨다. 그걸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휴머니즘적 승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 체결을 맺은 아랍권 최초의 국가지만, 여전히 두 나라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2007년 카이로국제영화제 조직위는 이스라엘이 관여한 작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이집트에서는 이스라엘영화들이 상영 금지된 상태다. 2007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작이자 이스라엘영화제 주요 부문을 석권하고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밴드 비지트…> 역시 이집트에서는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 출신 감독 에란 콜리린에게 이스라엘 밴드의 이집트 방문기보다는 이집트 밴드의 이스라엘 방문기를 찍는 편이 훨씬 수월했을 수밖에 없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인물들, 투픽(새슨 가바이), 할레드(살레흐 바크리), 디나(로니트 엘카베츠) 등은 이스라엘의 국민 배우들이며 밴드의 2인자 시몬(칼리파나투르)을 연기한 배우는 이스라엘에서 활동 중인 팔레스타인 배우다. 그러니까 안타깝게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로운 소통을 그린 영화에서 실제 이집트와의 소통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집트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국가의 텔레비전에서 오마 샤리프가 출연한 이집트영화가 나오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밴드 비지트…>를 둘러싼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같은 풍경, 먼 곳을 쳐다보는 듯 무표정한 인물들의 얼굴, 긴 침묵 사이의 짧고 엉뚱한 대화는 때때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떠오르게 한다. 언제나 한 박자씩 느린 인물들의 반응은 그 자체로 영화 고유의 리듬을 만든다.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음악과 최소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인물들, 그리고 평면적인 배경은 영화를 미니멀리즘적인 분위기로 감싼다. 그 여백에 쓸쓸한 유머가 배어 있다. 이 영화는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가장 낭만적인 만남에 대한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고, 투픽으로 대변되는 깐깐한 구세대와 할레드로 대표되는 자유분방한 신세대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매개로 삶,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시몬이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한 협주곡의 마무리를 두고 고민하자, 그의 하룻밤을 책임져준 이스라엘 친구가 조용히 조언한다. “그냥 거기서 끝나도 돼.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그곳. 작은 방, 램프의 불빛, 침대, 그리고 잠든 아기. 이 깊은 고독감 말이야….” 드라마틱한 결말을 원하거나 영화 곳곳에 스며든 고독감을 무료함이라고 느끼는 자들에게, 혹은 현실에 대한 날선 정치적 발언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에 외로운 선율을 품고 만남, 기다림, 헤어짐을 스쳐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작은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