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다시 한번 반복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운을 내게 되는 나이. 운동을 하기 전에 몸이 견딜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나이. 육체적 약함으로나 감정적 불안함으로나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나이. 아마 탐정소설 주인공으로 이보다 더 부적격 인물은 흔치 않을 정도다(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반전이 ‘화자는 사실 할아버지였다’였을 정도로 드문 설정이다). 게다가 할아버지도 아닌 할머니라니. 글래디 골드 시리즈 1권인 <오늘도 안녕하세요?>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할머니가 주인공인 미스터리다. 비슷한 시기에 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세상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화자인 글래디 골드 할머니와 그 친구들은 직접 나서서 죽음의 진상을 캐기로 한다. 사회의 일선에서 후퇴함과 동시에 그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할머니들의 도발인 셈이다.
저자 리타 라킨이 ‘미스 마플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이 시리즈를 칭했지만, 미스 마플 특유의 우아한 안락의자 탐정 캐릭터를 여기서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글래디 골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코지 미스터리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연애요소에도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는데, 미남 할아버지의 접근에 마음 설레하는 모습을 읽자면, 시계를 거꾸로 돌려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들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대목은 개그콘서트 뺨치게 웃긴다.
<워싱턴 포스트>는 “화려한 메이크업에 유대어 욕을 꿰고 있으며 식당에서는 새치기를 일삼는 미스 마플을 상상해보라. 그녀가 바로 글래디 골드다”라고 이 시리즈를 평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생각해보니, 저렇게 요란하고 시끄럽고 행동 중심의 할머니를 미스 마플에 비교하는 게 맞는 걸까 싶다. 하지만 그 차이는 노인의 역할과 모습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우아하게 뜨개질을 하며 병풍처럼 존재하기에 인생은 이제 너무 길어졌다. 이 책의 저자 리타 라킨은 <다이너스티> <닥터 킬데어>의 드라마 작가였던 것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다. 이 책의 원제는 <늙는 게 살인이다>(Getting Old is Murd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