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한발의 대포소리가 그의 고막을 때렸다. 중국 공산당 제2야전군 139연대 9중대장인 구지디(장한위)는 그 때문에 퇴각 명령을 알리는 집결호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집결호는 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지디는 울렸는데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퇴각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품고 있던 47명의 중대원들을 계속 사지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대원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고 자책한다. 혼자 살아남은 구지디는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형제’들의 죽음을 괴로워한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시체들을 옮겨다놓았던 광산의 토굴은 전쟁 뒤에도 발견되지 않고, 결국 용감히 싸우다 죽은 구지디의 부하들은 비석도 없는 무명용사가 되고 만다.
<집결호>는 전쟁에서 혼자 살아남은 자의 비극이다. 온갖 후회와 자책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구지디가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모습은 분명 죄를 용서받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그들이 겪은 참혹스러운 전쟁과 구지디의 고난과 역정을 보여준다. 전반부의 전쟁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모델로 삼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마치 6·25의 전장에서 노르망디 병사들의 몸이 찢겨나가는 듯한 사실적인 전쟁을 묘사한다. 하지만 후반부 역시 전쟁에서 죽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던 그 두편의 영화를 닮아 있다. 전쟁에 처한 한 개인의 비극이라고 보기에 구지디의 자발적인 고난은 매우 국가적일뿐더러 종종 낯뜨겁다. 감독 자신은 계몽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집결호>는 순국선열을 향한 묵념 같은 분위기가 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