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티지 포인트>는 첫 시퀀스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보여준다. 스페인 살라망카의 마요르 광장에 차려진 연단 위에서 미국 대통령 애시튼(윌리엄 허트)이 두발의 총성과 함께 쓰러진다. 이어서 광장 멀리서 한번의 폭발음이 들리더니 광장의 연단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애시튼 대통령은 테러 종식을 위한 범세계적인 결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특히 이날은 서방과 중동의 평화회담이 열리는 날이었다. 결국 미국 대통령 암살은 이런 평화무드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어떤 세력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궁극의 궁금증을 향해 바로 달려가지 않는다. 영화는 초반 20분 정도의 상황을 TV중계라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준 뒤 여러 명의 주관적 시점을 통해 이 거대한 사건을 재구성한다. 첫 번째 시선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반즈(데니스 퀘이드)의 것이다. 대통령 경호원인 그는 애시튼을 저격하려는 자의 총탄을 대신 맞았던 경력의 소유자. 그는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해 현장중계 화면을 살펴보다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여전히 관찰자인 스페인 경찰 엔리케와 미국인 관광객 하워드(포레스트 휘태커)의 시선이다. 네 번째인 대통령의 시점에 다다르자 사건의 진실은 좀더 명확해진다. 테러리스트들이 드러나는 다섯 번째 시점이 되면 전체적인 사건은 모습을 드러낸다.
<밴티지 포인트>에서 보이는 다중시점은 <라쇼몽>보다는 <24>에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이 영화는 시간을 되돌려 이야기를 재구성하기는 하지만 입장이나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기보다 부분적인 사실을 조금씩 드러내 전체적인 진실을 완성해나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장면들은 상당수가 이미 드러난 것인 탓에 새롭게 밝혀지는 내용이 별로 없어 지루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런 구성을 택할 만큼 이야기가 복잡한가 하면 꼭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다. 테러리즘에 대한 분노를 자아낼 만큼 생생한 폭발장면이나 살라망카의 좁은 길을 질주하는 자동차 추격신 등 무시할 수 없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는 데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상투적인 묘사 등 국제정치에 대한 몰이해도 한몫한다. 오락영화를 놓고 정치학을 진지하게 논하는 것이 촌스러울진 몰라도 최소한 평화주의자인 대통령과 매파 보좌진, 그리고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거대한 반미시위대의 모습 등은 조화롭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