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대권을 잡을지 알고 싶은 미국 유권자들은 여론조사를 참조할 것이다. 그렇지만 더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라면 전문가들은 아이오와 전자 거래소(Iowa Electronic Markets)를 보라고 권할 것이다. 아이오와 전자 거래소는 보통 사람들이 힐러리나 오바마의 ‘주식’을 주식시장에서처럼 사고팔 수 있는 전형적인 예측 시장이다. 힐러리가 토론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더 많은 사람이 그녀의 주식을 사고 그녀의 주식 가격이 올라간다. 이것은 힐러리가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이런 예측 시장은 미래의 일들을 예측하는 데 뛰어나며, 여느 여론조사나 전문가의 의견보다 더 정확하다고 한다. 2년 전쯤에 미 국방성은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예측시장을 만들면 어떨까를 고려하기까지 했다. 결국 ‘테러리즘 선물거래’라니 정치적으로 너무나 둔감한 것 아니냐는 여론의 격렬한 비판에 밀려 무산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같은 미국인이면서도 내 동포들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나로서는, 한국 영화산업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봤다. 실제로 할리우드는 이미 예측시장- 할리우드 주식시장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갖고 있다. 거기서 사람들은 박스오피스 성적과 누가 아카데미상을 받을 것인지를 놓고 가상 머니를 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예측시장이 그런 결과를 예측하는 데보다는 한국 영화산업에서 재능있는 인재를 찾아내는 데 더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어느 영화산업이건 간에 가장 어려운 일은 재능있는 인재를 발굴해서 그들에게 영화를 만들 기회를 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프로듀서들과 투자자들은 다수의 무명의 감독들 중 누가 가장 재능있는 감독인지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이걸 여론투표에 맡겨보면 어떨까?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어느 한국 감독이 앞으로 상업적이고 예술적인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가장 높은가?”를 놓고 예측시장을 연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참여자들이 예를 들자면, 10만원의 가상 머니로 시작해서 어떤 감독의 주식이건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기고, 그들의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일정 수준 이상 올리는 데 성공한 네티즌에게 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그런 시장이 존재한다면 나는 첫 번째로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의 주를 살 것이다. 그는 정말 재능있는 감독이다).
다른 게 아니더라도 영화 팬들에게는 재미있는 소일거리가 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면 프로듀서와 투자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식 가격은 특정 감독에 대한 관객의 신뢰도를 반영할 것이다. 기자들은 (아마도 프레스 스크리닝이나 새 영화 제작 계획 발표 뒤에) 주식 가격이 급작스럽게 오르거나 내리는 것을 보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아는가? 만약 이 게임이 제대로 자리잡히면 새로 떠오르는 감독들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게임 참여자들이 <씨네21> 같은 영화잡지를 더 많이 사볼지도.
물론 이 프로젝트에 잔인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스오피스에서 완전히 실패한 영화의 감독들은 그들의 주식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모욕까지 더해서 감수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스템의 민감성이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정말 훌륭한 감독의 재능이 엿보이는- 와 정말 못 만든 영화를 가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이론과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이 악마적 결합이, 영화산업에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나. 어쨌거나 무척 재미있는 일일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