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 길사마가 최근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한 한 인사를 놓고 기염을 토했다. 일찍이 조기 유학을 떠나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려다, 잘 안 됐는지 한국에 돌아와 한국의 캐네디가 되려고 하는데, 혼자 잘나 잘벌고 잘먹고 잘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아무런 책임도 애정도 없어 보이는 성장 배경을 갖고 공공의 영역인 정치에까지 진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이라는 주장이었다(헉헉 옮기기도 숨차다).
나는 솔직히 조금 무서워진다. 우리 사회의 ‘주류’는 언제부턴가 조기 유학을 떠나 내내 나라 밖에서 살아온(살고 있는) 이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선한 이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많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의 경험이다. 고급 세단 타고 비싼 사립학교 다니다 미국의 고급 주택가에서 역시 비싸게 공부해 고급 일자리 얻은 다음 비슷한 배경의 배우자를 만나 자기 자식도 비슷한 코스로 키우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세상은 제한돼 있다. 그들의 선의가 경험의 폭에 갇혀, “어머,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지만 저 사람들 길바닥에서 저러고 있으니 정말 불쌍해” 식으로 발휘된다면?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대한민국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고와 판단을 먼저 하기 쉽다. 자기를 버리는 수준의,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막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내각 인선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고 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하나같이 땅땅땅 억억억 부자들이다. 집이 서너채에 전국 산지사방에 땅을 보유한 이들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부동산 투기는 대체 누가 한 것일까.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요청 사유서’에 실린 재산내역을 분석한 기사를 보면, 이들은 대체로 ‘우연히도’ 부동산 개발 바람을 타고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배불린 10년이다. 그런 이들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까.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탈당과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부동산 부자 내각의 면면을 접했다. 단 의원의 부인 이선애씨는 경기 성남의 집 근처 상가에서 채소가게를 하고 있다. 남편이 노동운동을 할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국회의원을 할 때나 변함없다. 살고 있는 아파트도 이씨가 일찍이 분양받아 새벽일 해가며 대금을 부어 마련한 것이다. 단 의원 같은 이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평균 재산 40억원의 불로소득을 누려온 이들은 하루아침에 국정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