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데스노트는 없다. 노트에 이름이 쓰여지면 죽게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 <데스노트> 1, 2편과 달리 스핀오프 작품인 <데스노트 L>엔 데스노트가 없다. 주인공 L은 데스노트를 태워버린다. <링>으로 유명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연출을 맡은 <데스노트 L>은 2편에서 데스노트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썼던 L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23일간을 엿보는 이야기다. 전편에서 대립을 이뤘던 라이토와의 대결은 없으며 L(마쓰야마 겐이치)의 23일을 구성하는 건 새로운 사신 마토바(다카시마 마사노부) 일당과의 대결이다. 마토바 일당의 목적은 전편 라이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썩어가는 인간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을 말살해야 한다는 것. 범죄자를 택해 살인을 저질렀던 라이토와 달리 바이러스로 인류 전체를 말살하려 한다는 점은 <데스노트 L>의 규모가 전편보다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확장된 영화의 세계관은 너무나 단순해 허황스럽다. 전편이 인간에게 잠재된 죄의식의 문제를 유치하게나마 제시했다면 <데스노트 L>은 현존하는 모든 인간은 사라져야 하는 존재라 믿는 마사토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인간은 악이기 때문에 모두 갈아엎어야 하며 이를 막기 위해선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L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극단적인 성향의 인물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며 이야기를 단순하게 몰아간다. 몇몇 과도한 설정에선 실소가 나오기까지 한다. 공포의 묘사, 인간 심리의 불안함을 섬세하게 포착했던 나카다 히데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데스노트 L>에서 유일하게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면 전편과 달라진 L의 모습이랄까.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로만 세상을 봤던 L은 이제 밖으로 나와 달리고, 자전거를 타며, 아키하바라 메이드 카페까지 간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겠지만 그 노력의 진심도 제대로 묘사되진 않았다. 전편의 성공으로 제작이 결정된 작품답게 2월9일 일본에서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