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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숭례문의 선택
김소희(시민) 2008-02-18

기운이 없다. 어깨며 허리며 여기저기가 결린다. 살도 자꾸 찐다. 한의원에서는 내 몸이 오행상 나무(목)라며, 간과 근육을 조심하라고 충고해줬다. 겨우내 쌓인 지방도 거둬내야 한다며, 밥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라고도 했다. 화들짝 놀라 약을 지었다(알았어요. 밥은 2인분에서 1인분으로 줄이면 되죠? 그 이상은 못 줄여요. 차라리 술과 남자를 끊을 게요).

불타버린 숭례문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소방대원들에게 욕을 퍼붓던 현장의 시민들도 어느 틈에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단다. 활활 타오를 때 믿기지 않게 향긋한 냄새가 났다고도 한다. 숭례문의 목조 부분은 완전히 소실됐다. 문득 내가 아프기 시작한 게, 부쩍 기운이 없어진 게 그날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 눈물을 흘렸고 국화를 바쳤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무언가가 사라졌을 때 느끼는 아득함 그 이상이다. 어느 정신 나간 노인네의 방화였지만, 결국 자기 몸을 그렇게 불사른 건 숭례문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600년 넘는 인고의 세월을 버텼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성장의 매연과 경쟁의 모욕은 견디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가슴이 서늘하다. 새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 모금’을 제안했다. 몰염치의 극치이다. 평소 그분이 공적 감수성이 없다는 것은 알았으나 쇠 기운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의 실용과 경제에도 쇳소리가 지나쳤지. 쇠(금)는 나무(목)를 해친다.

나무의 기운은 부드러움, 인자함 같은 것이다. 성격도 그렇고 몸도 유연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쓰면, 이상징조가 나타난다. 누구든 힘들 때에는 급한 대로 자신에게 제일 많은 기운을 꺼내 쓴다. 쓰다 보면 더 빨리 고갈된다. 주력 기운을 다 퍼쓰면, 기력이 쇠한다. 어지간해서 다른 기운으로는 보충이 안 되니, 병들기 쉽고 성격도 바뀐다. 성질이 더럽고 화를 잘 내며 말을 거칠게 하는 사람 중에 의외로 오행상 나무인 이들이 많다. 너무 많이 써버려(혹은 뜯기어) 타고난 부드러움이 바닥나버린 것이다. 그러면 간이 쉽게 상하는데, 이미 그전에 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그러니 운하 파고 영어 읊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둥 성질 돋우지 마시길. 내 성격 더러워지고 간 상한다고 당신이 약 한첩 해줄 거 아니잖아?)

다행히 봄이다. 봄은 나무 기운도 왕성해지는 계절. 더 나빠지기 전에 자연의 힘을 빌려야겠다. 무거워진 몸을 살풀이하기에도 봄이 제격이란다. 그렇지. 곰곰 생각해보면 자연이 틀린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