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미국에선 작가조합의 파업 때문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올해 오스카 후보 명단은 수상식 여부와 무관하게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구경꾼의 견해로 말하자면 아카데미가 이만큼 괜찮은 명단을 내놓은 적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흔히 아카데미 스타일이라 말하는 보수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작품이 올해만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똑같이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코언 형제는 칸영화제 감독상을 3번이나 탔고 폴 토머스 앤더슨은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과 칸영화제 감독상을 탔지만 모두 오스카와 별 인연이 없었다. <파고>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번번이 후보 지명에 만족해야 했다. 아카데미가 지난해에야 뒤늦게 오스카를 거머쥔 스코시즈를 보고 반성한 것일까? 코언 형제와 폴 토머스 앤더슨이 경합을 벌이는 모습은 어쩐지 칸영화제 같은 느낌이라 어색하기까지 하다. <주노> <마이클 클레이튼> <어톤먼트> 등 다른 작품상 후보작 감독들 역시 오스카와 인연이 없는 인물이라 올해 명단은 확실히 신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제작자 리스트에는 스콧 루딘이라는 이름이 있다. <슬리피 할로우> <디 아워스> <로얄 테넌바움> 등을 만들었던 그는 블록버스터와 인디영화의 틈새에서 작가영화를 만들어서 이름을 얻은 인물.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 루딘은 올해의 후보작 선정에 관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상태에 대한 만연해 있는 공포감을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때때로 시대정신이 드러나게 된다.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연금술의 마법처럼”이라고 덧붙였는데 예년과 달리 어둡고 비관습적인 엔딩을 가진 영화들이 후보에 오른 이유를 설명하는 말이다. 시대정신 탓인지 아카데미의 변모 탓인지 몰라도, 고루한 느낌이 없는 이번 후보 명단은 우리가 오스카의 배우들을 특집기사로 다루는 이유를 제공해줬다. 우리가 주목한 배우들에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 줄리 크리스티, 토미 리 존스, 비고 모르텐슨 등 새 영화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베테랑이 있고, 하비에르 바르뎀, 마리온 코티아르, 틸다 스윈튼 등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번 보면 잊지 못할 배우들도 있으며 엘렌 페이지와 시얼샤 로넌처럼 정말 혜성처럼 등장한 소녀도 있다. 예년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이 제대로 열린다면 올해는 이번 특집기사를 옆에 놓고 참고했으면 싶고, 조만간 개봉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주노> <어톤먼트> <이스턴 프라미시스> <어웨이 프롬 허> <아임 낫 데어> 등을 기억해두시라 권하고 싶다.
이번주 전영객잔에서 정성일 평론가는 미국영화가 변했다고 선언했다. 1999년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가 새로운 방식의 영화보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글을 읽고 나니 올해 아카데미 후보작 명단도 어떤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정성일 평론가는 그것이 할리우드영화가 좋아졌다거나 나빠졌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러니까 어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영화를 만들고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는 것이다. 노트북 시대, 유튜브 시대를 한국영화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숙고해볼 만한 문제제기라는 생각이 든다.
P.S. 이혜정 기자가 찍은 표지 사진을 혹시 합성이라 착각하실 분이 많을 것 같다. 거울을 놓고 찍은 사진이며 절대 합성 아님을 알려드린다. 훌륭한 사진이라 따로 언급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