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란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 적이 없는지? <도로시의 모험>도 아니고, <오즈의 도로시>도 아니고, 어째서 <오즈의 마법사>일까? 어린 시절에 읽기로는 <오즈의 마법사>는 캔사스에 살던 도로시가 우연한 사고로 낯선 땅에 떨어지고, 동쪽 마녀를 죽이게 되고, 오즈의 마법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 서쪽 마녀를 죽인 뒤 고향으로 행복하게 돌아오는 모험담이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면, 이 책은 오즈의 마법사의 욕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다른 이의 힘을 빌려 적을 처치하는, 오즈의 마법사에 관한.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도와주면 나도 너를 도와주마.”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서쪽의 못된 마녀를 죽이고 오너라.” 마법사는 동쪽 마녀의 구두에 갇힌 도로시를 마녀를 죽이라고 보냈다. 소녀에게 남자가 할 일을 맡겨서 보낸 것이다. 마녀가 승리했다면 그 골칫덩이 소녀를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도로시가 승리했다. 오즈의 마법사가 승리한 건가?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정적, 서쪽 마녀 엘파바에 관한 이야기다. 뉴욕과 런던, 도쿄에서 반향을 일으킨 뮤지컬 <위키드>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저자 그레고리 머과이어는 “사람들이 자신의 적을 어떻게 악마로 탈바꿈시키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위키드>는 서쪽 마녀로 불린 엘파바의 태생에서부터 도로시에 의한 최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되었다. 녹색 피부에 이빨이 뾰족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머과이어는 <오즈의 마법사>의 저자인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이름 첫 글자들에서 발음을 따와 소녀의 이름을 엘파바(Elphaba)라고 지었다. 엘파바는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들이 인간과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먼치킨랜드에서 성장한다. 대학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즐겁게 살던 엘파바는 오즈의 마법사가 독재자가 되자 학교를 뛰쳐나와 지하운동에 뛰어들고, 아나키스트가 되기에 이른다. 줄거리만 보면 복잡하고 어른스러운 정치적 투쟁기 같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가 너무 친절해서 생략하고 건너뛴 먼치킨랜드의 모든 것에 관한 역사다. 소설에 관한 소설이니만큼 어느 쪽의 이야기가 옳은지(혹은 어느 쪽 편을 들지)를 신경쓰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오즈의 마법사>가 자극한 상상력을 그레고리 머과이어가 재치있게 비틀고 의문을 제시하며 풀어냈다는 게 중요하다. <오즈의 마법사>와의 공통분모가 많은 엘파바의 이야기는 <위키드> 1, 2권이다. 3권은 서쪽 마녀 엘파바 아래 자라 그녀의 저항 정신을 이어가는, 리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권까지만 읽어도 서쪽 마녀에 관한 호기심은 충족되지만, 오즈의 미래에 대한, 리르에 대한 호기심은 3권까지 내쳐 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