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성의 그것보다 훨씬 깊고 오묘하다. 현대의학으로도 아직 다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 그래서인지 남성들은 이 성적 엑스터시에 대해 몽정기적인 상상력을 동원하곤 하는데, “홍콩 로맨틱 섹시코미디의 결정판”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일렉트로닉 걸>은 그런 상상력을 시발점으로 탄생한 영화다.
성적 흥분을 하면 몸에서 고압의 전류가 발생하는 젠(안천문).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남자들은 통구이가 되기 일쑤다. 미드 <히어로즈>의 영웅들과 필적할 만한 능력이지만 남자와 오랫동안 진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그녀에게는 달갑지 않은 신체적 장애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남자와 잠자리를 할 때 여섯 자리의 로또 번호가 보이기 시작한 것. 하지만 그녀가 절정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통구이가 되는 남자들 때문에 고작 3~4개의 숫자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오르가슴의 절정에 도달하기만 하면 님도 보고 뽕도 따게 되는 셈인데 어찌 가만있을 수 있으리. 젠은 자신에게 오르가슴을 선사할 수 있는 남자들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감독인 유보현은 “남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성적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글쎄, 솔직히 이 영화에서 그런 주제의식을 찾아볼 관객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유쾌한 몽정기적 상상력을 더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