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 ABC로 불렸다. 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하지 않은 일이면 무조건 했다는 뜻이다. 우리의 새 대통령 당선자는 ABN인 것 같다. 애니th잉 밧 노무현(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흐렌들리’한 영어 표기법 제안을 따랐음). 한데 이번 영어 공교육 확대 정책은 완전 허당이다. 큰 격변인 것처럼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지만, 영어수업 영어로 하고 교사 실력 높이고 말하기·쓰기 강화하는 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차근차근 추진해오고 있는 것이다.
일반 과목까지 영어로 가르치는 몰입교육을 하겠다고 했다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하고, 영어 잘하면 군입대 대신 영어교육 도우미로 대체복무시키겟다고 했다가 어느 법안에 담긴 얘기일 뿐이라고 발뺌하고, 영어강사 양성과정(TESOL) 이수자를 영어전용 교사로 쓰겠다고 했다가 검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결국 달라진 것은 수능 대신 국가영어능력평가 시험을 상시적으로 치르게 한다는 것 정도다. 그러나 이것도 교육부가 지난해 여름부터 착수한 사업을 확대시행하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책임이 크다. 대입3단계 자율화 방안 발표 때 난데없이 몰입교육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 식의 실천방안이 부랴부랴 나왔다. 위원장이면 인수위에서 합의되지 않은 얘기를 할 수는 있다. 문제는 위원장의, 아니 배후인 대통령 당선자의 현실인식이다.
한해 15조원을 쏟아붓는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어지간한 실용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대체 국민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단지 영어 잘하려고 학원 가고 연수 떠나나? 대학 잘 가려고 그러는 거다. 왜 술술 못하나? 고입부터 대입, 고시, 취업, 승진에 이르기까지 관문마다 ‘게이프 키퍼’일 정도로 영어의 사회적 가중치가 이렇게 높은데, 누가 쉽게 익히고 편히 떠들겠는가. 원인에 대한 진단없이 국가경쟁력이라는 막연한 접근으로 군사작전 짜듯 교육정책을 세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외국 교과서 들여오겠다, 영어만 잘하면 교사로 쓰겠다, 어린이 영어도서관 많이 세우겠다는 식의 코끼리 다리 긁는 아이디어를 실천방안이랍시고 내놓는 것이다. ‘영어 카스트’의 출발점인 본고사를 풀어주면서, 실용 영어니 사교육비 절감이니 떠드는 것부터가 뭐니뭐니해도 거대한 낫th잉이다. 인수위 사람들은 빵상교 신도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