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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일종의 우화 <내 사랑 유리에>
최하나 2008-01-30

콜걸을 사랑한 소년, 악마에게 영혼을 팔다

주유소와 모텔, 두채의 건물만이 덩그러니 자리잡은 어느 황량한 국도변. 아버지가 종적을 감춘 뒤 어머니와 단둘이 하늘주유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동아(강희)는 건너편 파파모텔의 콜걸 영자(고다미)를 남몰래 좋아한다. 포주인 아버지(김준배) 밑에서 몸을 파는 영자를 매일같이 망원경으로 훔쳐보던 동아는 그녀에게 ‘유리에’라는 이름을 붙이고 은밀한 판타지를 살찌운다. 영혼을 팔면 10년간 변치 않는 사랑을 주겠다는 악마의 말에 넘어간 그는 거래로 유리에를 얻지만, 이내 10년이 아닌 영원한 사랑을 갈구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제작 HD 장편 지원작인 <내 사랑 유리에>는 <뚫어야 산다> <풀밭 위의 식사>를 연출한 고은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HD영화 특별전을 통해 관객을 찾았으며, 이번 작품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동아 역의 강희는 ‘정다빈의 남자친구’로 이미 수차례 인터넷 뉴스란을 장식했었다. 유리에, 나타샤, 실비아 등 영화의 작명법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시공간 불명의 동화적 색채로 가득한 <내 사랑 유리에>는 ‘영혼을 거래한다’는 <파우스트>적인 설정에 근거해 사랑에 관한 일종의 우화를 그리고자 한다. “말이란 안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껄이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감독의 변처럼 영화는 인물들의 행동보다는 주로 말에 집중하는데, 이는 시종일관 “알래스카의 소녀처럼 신비로운 유리에”, “유리에는 바람인가요, 구름인가요” 등의 낯뜨겁고 공허한 수사들로 가득하다. 몸을 더럽힌 여자와 그 모든 것을 용서함으로서 진정한 사랑을 구현하는 남자. 달력 그림 같은 키치적 풍경 속 <내 사랑 유리에>가 목놓아 부르짖는 ‘사랑’은 그것이 뿌리박고 있는 낡은 남성 판타지만큼이나 진부하고 불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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