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든(조셉 고든 레빗)을 잡아 지하에서 폭행하던 핀(루카스 하스)과 터그(노아 플레이스)는 위에 올라가 이야기하자며 집의 주방으로 들어간다. 마약 조직의 아지트인 지하실이 평범한 주택의 주방으로 연결되고 미국 남부의 평온한 풍경을 창밖으로 한 주방에 인자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핀의 엄마인 그 여자는 마치 아들 친구에게 간식을 내주듯 브랜든에게 애플주스와 시리얼을 내민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여자의 죽음, 마약 조직의 얽히고설킨 배신을 따라가는 영화 <브릭>은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누아르다. 마약이 틀어놓은 학교의 질서가 출구없이 어둡게 이어지고, 징계와 체벌을 손에 쥔 교감은 경찰의 자리를 대신해 학생들의 숨통을 조인다. 로커에서 오고가는 비밀편지, 학교 연극과 파티를 무대로 이어지는 음탕한 인물간의 흐름 등 <브릭>은 치밀하지만 어딘가 귀여운 구석을 간직한 잿빛 영화다.
영화는 브랜든의 여자친구 에밀리(에밀리 드 라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며칠 전 갑자기 사라진 에밀리는 터널 앞에 죽어 누워 있는 시체로 발견된다. 이후 영화는 바로 3일 전으로 돌아가 브랜든이 에밀리의 종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브랜든은 로커에서 발견한 쪽지와 학교의 소식통 브레인(매트 오 레리)의 힘을 빌려 실종 이후 에밀리의 행적을 파헤친다. 에밀리가 갖고 있던 쪽지의 메시지에 따라 학교의 비밀 파티에 참석하고, 최근 에밀리와 어울렸다는 도드(노아 세건)를 협박해 에밀리의 정보를 묻는다. 에밀리의 주변 인물을 하나씩 밟아 에밀리를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에밀리는 브랜든에게 “사랑했지만 이미 서로의 세계가 다르다”며 떠나달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사건 당일. 브랜든은 시체가 된 에밀리와 재회한다.
누아르 장르의 틀을 고등학교에 그대로 적용한 <브릭>은 사실 이야기의 전개나 갈등의 양상만 보면 새로울 게 없는 영화다. 원인 모를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한 여자의 질투가 개입되어 있으며 복잡한 마약 조직 사이를 주인공이 파헤치며 다닌다. 하지만 <브릭>은 누아르의 세계를 철저히 학교 생활에서 가져와 새롭게 변형한다. 이 영화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라이언 존슨 감독은 본인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근처의 해변 동네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극중에 등장하는 학교도 그가 졸업한 모교다. 존슨 감독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장소에서 그곳의 질서와 규칙을 살려 10대 누아르극을 완성했다. 특히 부잣집 애들, 뒷담에서 혼자 밥먹는 아이, ‘로라’패에 꼽사리 껴 다니는 애들 등 영화는 누아르 세계를 구성하는 인물군을 학교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부류의 학생들로 나누어놓았다. 브랜든이 한번의 마약사건 이후 왕따를 자처하게 된 사연과 에밀리가 도발을 서슴지 않는 로라(노라 제히트너)와 한 무리가 되고 싶어했던 이유 등은 영화의 가장 큰 갈등 축이 된다. 학교 로커, 쪽지, 주스와 콘플레이크 등 단순한 소품 외에도 학창 시절의 사소한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 묘사의 섬세함이 적확하고 치밀해 과연 무리를 나누어 몰려다니는 학교 풍경에 마약이 개입하면 이토록 핏빛나는 참극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다.
사건의 추적 과정을 연결하는 편집의 리듬감도 좋다. 러키 매키 감독의 <메이> 편집으로 영화를 시작한 라이언 존슨 감독은 잠자다 깨어난 브랜든의 장면을 자주 인서트숏으로 사용하며 복잡하고 치밀하게 연결된 영화에 몽환적인 리듬을 준다. 거친 액션과 시차를 둔 리액션숏, 기발하게 사용된 페이드 아웃은 10대 누아르의 세계를 장식하는 효과적인 발랄함이다. 어둡지만 무겁지 않고, 막막하지만 끝은 아니다. 마치 브랜든의 삶을 질주하며 달리듯 영화는 인물의 내면을 외부 세계와 뒤섞어놓는다. 그것이 청춘누아르극을 완성해낸 <브릭>의 독특함이고, 기존의 추리극, 누아르영화와 <브릭>을 구분하는 포인트다. 단 20일 촬영에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200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