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공인한 사람만이 매니저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인가. 지난 1월21일 오후 7시, 고진화 국회의원 의원실에서 ‘공인(公認)연예인관리자의 업무 등에 관한 법률안’ 발의에 관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발의안을 한줄로 요약하면 ‘앞으로 연예기획업(매니지먼트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업자가 국가공인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연예인들도 이들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모든 공식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고 의원은 “현재 최소한의 기본 관련법조차 전무한 법의 사각지대인 연예산업 위에 시스템적인 기초 뼈대를 세우자는 것”이라고 발의의 취지를 밝혔다.
이 법안을 공동 구상·연구·발의한 사람은 변희재 빅뉴스(bignews.co.kr) 대표이사 겸 미디어평론가와 하윤금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정책연구팀 책임연구원 등이다. 고 의원을 비롯해 간담회에 참여한 3인의 발의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문광위 차원에서 소위원회가 꾸려지면 오는 2월쯤 공청회가 열릴 것”이라고 추후 일정을 밝혔다. 코앞에 닥친 듯 보이는 이 제도 시행과 관련해 일선 업계 관계자들 대부분은 아직 정확한 내용조차 모르고 있다.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엄청난 혼란의 가중도 예상되는 이 법안에 관한 의문점들을 우선 몇 가지 사항으로 정리해보자.
질문 1. 연예인기획자? 연예인관리자?
발의자들에 따르면 이 법안은 ‘연예인기획자’에 대한 법안이지 ‘연예인관리자’에 대한 법안이 아니다. 기획자와 관리자. 이 둘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하윤금 박사가 정리한 개념에 따르면 “기획자는 에이전트(agent), 관리자는 매니저(manager)”다. 두 직종의 역할이 이렇게 예리하게 구분된 실례를 들라면 미국의 연예산업이다. 이 법안은 실제로 그쪽 현실을 가장 주요하게 참고했다.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을 그대로 옮겨오면 에이전트는 “배우나 가수의 각종 출연계약에 서명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며, 매니저는 말 그대로 “연예인들의 각종 활동을 구체적으로 관리(management)해주는 사람”이다.
문제는 국내 업계가 이 두 가지 기능을 ‘매니저’라는 용어 아래 혼합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 법안은 국내에서 관습적으로 통용되어온 용어부터 먼저 재정의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이기도 하다. 하 박사는 “연예인의 계약서에 서명할 권한을 실질적으로 가진 사람을 기획자라 부르고, 그들에 대해 공인자격제도를 실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국내 현실에 적용시켜보면 “실장급 이상의 매니저들이 될 것”이라는 게 하 박사의 설명. 또한 “현재로선 그런 권한이 있는 위치가 아니라 하더라도 앞으로 그 일에 대한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격증을 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승진할 의사가 있으면’ 시험을 쳐야 한다는 얘기다.
질문2. 매니지먼트사 대표라면 모두 시험을 쳐야 한다?
기존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 않다. 변희재 빅뉴스 대표는 “기존 사업자들에 한해 경력을 감안하는 면제조항을 둘 것”이라며 “일정 기간 이상의 업무 경력을 지닌 매니저들에게는 시험없이 자격증을 발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면제조항은 자격증 시험 실시 첫회에 한해서만 적용될 듯 보인다.
이 법안은 기본적으로 매니지먼트사 대표의 직위를 가진 자라면 소속 연예인들의 계약 업무를 최종 승인, 이행하는 자라고 전제한다. 즉 자격증 없이 매니지먼트사의 대표일 수는 없다는 얘기. 대표이면서 계약 권한을 갖지 않는 경우, 즉 자격증 소지자를 고용해 직원으로 두고 그를 통해 계약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위법 행위다. “공인중개사의 경우도 동일한 규정이 관련법에 존재한다. 대표에게 자격증 없이 다른 중개사가 그 사무소에 소속돼 계약을 중개하면 자격대여라는 사유로 불법 행위가 된다”는 게 변 대표의 설명. 중개업무와 연예기획업의 성격은 천지차이지만 “국가고시를 통해 공인자격을 부여하는 일인 만큼 국가공인자격증법의 기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발의자들의 견해다.
질문3. 무슨 과목을 시험봐야 하나?
변 대표의 설명을 옮기면 이렇다. “민법은 필수일 것이다. 민사계약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 공인관리자 관련법안 공부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 법 과목은 필수가 될 것이고 업무에 관련된 대중문화개론, 세계대중문화론 등의 대중문화 과목이 두개 정도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법 관련 지식을 요구하는 시험에 대해 하 박사는 “실정 조사를 할 당시 국내 매니지먼트 업계 종사자들이 특히 해외 계약업무를 치를 때 기본적인 법적 사항들에 대한 지식조차 빈약해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업계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말하자면 이런 자격시험은 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도 읽힌다.
질문4. 지금까지의 계약 관행과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무엇인가?
이번 발의안은 매니지먼트 사업자들에게뿐 아니라 연예인들에게도 의무행위를 규정한다. 먼저 발의안이 규정한 ‘연예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연예인’이라 함은 가창, 연기, 각종 방송 프로그램 진행 등의 재능으로 대중에 즐거움을 제공하며, 이에 대하여 일정한 보수 내지 대가(형식이나 명칭을 불문하고 모든 경제적 이득을 포괄함)를 받으며 활동하는 자를 말한다.” 이 사람들이 공식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연예인기획자, 즉 공인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대표로 있는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게 의무사항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계약은 문화관광부령으로 정하는 표준계약서를 따른다. 국내 모든 연예인이 동일한 양식으로 각 소속사와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질문5. 연예기획사는 제작업을 병행할 수 없다?
이번 발의안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의 논점이 이것이다. ‘연예기획사의 제작업 병행 금지 조항’. “연예인기획업자는 다른 법률에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예인기획업 외에 영화 및 드라마 등의 제작업을 겸업할 수 없다.”(제12조 제1항) 이 부분은 앞서 설명한 연예기획자 자격증과는 다른 궤의 논의다. 변 대표는 이에 대해 “매니지먼트사가 제작사를 운영하면서 자체제작 영화나 드라마쪽으로 소속 연예인들을 투입시키는 것은 쉽게 말해 시장에 원활한 공급을 막는 일”이라고 말한다. “제작시장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는 게 발의자들이 설명하는 의도. 변 대표는 “공인중개사 관련법에서도 중개사는 중개만 할 수 있지 토지사업은 못하게 돼 있다. 자격대행을 공인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강력한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그 대신 권리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은 반대급부로서 필요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업 병행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 박사는 “매니지먼트사가 특정 제작사에 대한 투자 형태로서 지분을 소유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분의 비율은 “일정 비율 이상 취득할 수 없고, 구체적인 지분비율은 문화관광부령에 따른다”고 발의안은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들을 골자로 하는 이번 발의안은 꼼꼼히 따지고 들수록 다양한 의문점들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과연 국내 매니지먼트 사업의 현실을 얼마나 고려한 법안이냐는 것이다. 지금껏 관습적으로 통용된 직종 명칭에 대한 개념부터 뒤흔드는 이 법안에 대해 홍종호 한국매니지먼트협회 부회장은 “법안 시행에 대한 협회의 기본적인 입장은 유보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며 “법적 전문가들의 시각과 현업 종사자들의 시각 차이가 크다는 인상이다. 현업 종사자들과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비단 매니저들뿐 아니라 연기자들, 가수들과 같은 연예인들의 의견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 의원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정법안이다. 제정법안이라는 것이 원래 모든 요소에 대한 규정을 처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이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관련자들과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어쨌거나 발의자쪽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은 “자격증을 받아서 매니저가 되느냐 마느냐 그 자체가 아니”다. 매니지먼트 사업자격을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연예인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불공정 계약사례들을 예방할 수 있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산업의 체계화를 통해 비용 누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라는 것이 발의의 취지다. 이런 취지에 대해서는 매니지먼트 업계쪽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협회 차원에서도 표준계약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산업을 체계화한다는 의도는 우리도 환영이다. 다만 시기를 좀 늦추더라도 현실을 최대한 감안하여 적용 가능성 높은 법안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 제정을 통한 산업의 체계화 작업이 시급하다”는 쪽과 “현실적인 법안이 필요하다”는 쪽의 입장. 양쪽의 시각차는 어떻게 좁아질 수 있을 것인지, 발의자들쪽의 설명대로 오는 2월 문광부 소위원회 결성을 통한 공청회가 열리면 그 첫 번째 논의 과정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