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지난 1월22일자 각 신문에 태안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해 대표이사와 임직원 일동 명의로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실었다. 상품 광고가 아니라 대국민 발표 형식의 사과 광고이다. 삼성의 책임을 인정한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나오자 더이상 뭉개고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일간지뿐 아니라 경제지, 영자지에도 다 실었으나 유일하게 <한겨레>에는 이 광고를 내지 않았다.
<한겨레>가 삼성에 밉보인 것은 지난해 10월 말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실체를 폭로하면서부터다. <한겨레>는 이건희 일가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는데, 그때부터 <한겨레>는 물론 <한겨레21>의 지면에도 일체의 삼성 광고는 사라졌다. 광고만 사라진 게 아니다. 해마다 설과 추석이면 열리는 <한겨레21>의 퀴즈큰잔치 선물 목록에도 더이상 삼성 노트북은 없다. 늘 2등 상품이었는데, 이번에는 빠졌다. 사과 광고를 <한겨레>에만 싣지 않은 것은 그룹 차원의 결정으로 보인다. 삼성의 한 임원은 “그룹에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광고 집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홍보팀에서는 “이유가 없다”, “미안하다”고 했다. 확실히 ‘관리’의 삼성이다. 사주 일가의 심기를 일사불란하게 헤아린다. 삼성 직원들에게 측은지심도 든다. 오죽하면 사무실에서 손톱 깎은 것까지 회의 때 질타당하고, 잠깐씩 졸 때에도 부동자세로 앉아서 졸까.
이 일을 두고 광고 집행은 기업 고유의 권한이라는 얘기와 광고를 미끼로 언론을 길들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삼성은 어떤 언론에든 1등 광고주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1등주의의 지표로 꼽힌다. 거대한 성역이다. <한겨레> 구성원의 한명으로서 거참 말하기 남세스럽다는 기분과 함께, 이들이 진짜 입맛에 안 맞는 언론은 문 닫게 하려는가 하는 공포도 든다. 생각 같아선 안드로메다에서 온 친구들을 모아 사주 일가와 추종자들을 태안에 세워놓고 뿅뿅뿅 춤이라도 추게 하고 싶지만, 공정한 기사를 써야 한다는 직업 윤리는 저버리고 싶지 않다. 삼성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삼성스러워지지 않는 것이니까.
삼성에 당부하건대, <한겨레>에 광고는 안 주더라도 태안 주민들에게 져야 할 책임은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미술품 팔아서 보상하라”는 절규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광고를 보니 사고의 원인을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돌리며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말은 전혀 없던데, 정말 삼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