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장자나 슈니츨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꿈과 현실을 본질적 차원에서 분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네스 팰트로의 남동생 제이크 팰트로가 처음 연출한 장편영화 <굿나잇>이 다루는 세계는 꿈같은 현실 또는 현실 같은 꿈이다. 영화음악감독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CF음악을 만들고 있는 개리(마틴 프리먼)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모자라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 도라(기네스 팰트로)가 미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큐레이터가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CF음악 ‘따위’나 만들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개리는 꿈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 아나(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난다. 희한하게도 아나는 매일같이 꿈속에 등장할 뿐 아니라 개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이제 개리는 자신의 삶의 중심을 꿈으로 옮기게 되고 현실은 더욱 등한시한다. 게다가 개리는 아나와 똑같이 생긴 멜로디아라는 여성을 현실에서 만나게 된다.
꿈을 마음대로 조절하려 한다거나 꿈에 대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중반부까지 <굿나잇>은 <존 말코비치 되기>나 <수면의 과학>처럼 기발한 세계를 다루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나가 멜로디아라는 이름으로 개리 앞에 등장하면서부터 꿈과 현실의 경계는 지극히 명확해진다. 멜로디아는 꿈속의 그녀와 달리 천박하고 성질이 안 좋으며 개리에 대해 어떤 호감도 느끼지 않는다. 현실의 대척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제 꿈은 지극히 허망하고 무의미한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개리의 친구인 폴(사이먼 페그)의 결혼생활이 곁들여지면서 이야기는 급속하게 사랑의 의미를 되묻는 쪽으로 선회하고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꿈을 꾸지 말라’는 지극히 평범한 교훈이 슬금슬금 모습을 비추면서 초반의 흥미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데뷔 감독에게서 흔히 드러나는 불안정한 연출력과 치기가 지나쳐 거슬리는 몇몇 장면에도 불구하고 <굿나잇>이 그나마 균형감을 갖는 데는 배우들의 힘이 컸다. 누나를 캐스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제이크를 오히려 설득해 출연하게 됐다는 기네스 팰트로를 비롯해 영국판 <오피스>로 이름을 알린 마틴 프리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조화로운 연기는 영화를 풍성하게 했다. 여기에 <뜨거운 녀석들>의 사이먼 페그, 꿈 해몽가로 등장하는 대니 드 비토 등이 어우러져 연기만큼은 성찬을 이뤄낸다. 특히 브릿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메오로 출연한 영국 밴드 펄프의 리더 자비스 코커가 반가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