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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영화

유럽에 처음 소개된 북한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 유럽 관객에게 생소한 기호들로 가득해

<한 여학생의 일기>

평양 영화스튜디오에서 제작되고 유럽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인 북한영화에 대해 프랑스 평론계가 입을 모아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북한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의 흥행실패는 이미 예측했던 일이다. 장준학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이 ‘좋은 영화’의 미학적 기준 어느 하나에도 부합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영화가 전혀 흥미롭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한 여학생의 일기>는 제목 그대로 조그만 시골집에 가족과 함께 살며 새로 지은 대형아파트에 입주하기를 꿈꾸는 한 여고생의 생활을 그린다. 초반부 주인공은 늘 집을 비우고 일에만 몰두하는 아버지, 오로지 남편의 과학연구를 돕는 일에만 헌신하는 어머니에게 반항하지만, 가족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차츰 이해하게 된다.

프랑스 평론계는 이 작품의 밋밋한 시나리오, 선명하지 않은 색상, 깨끗하게 처리되지 못한 후시녹음(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계속 이상한 메아리 소리가 울린다), 밤·낮의 차이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촬영기사의 무능함 등 테크닉상의 미약한 점 등을 지적했다. 게다가 감독의 예술적 비전은 자동차 백미러에 부적을 달아두듯 프레임 위쪽 여기저기를 나뭇가지로 장식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작품 자체가 프랑스 관객에게 어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컷마다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기호들이 가득 차 있어서 그나마 관심가는 구석이 있다.

<한 여학생의 일기>에서 북한은 무엇보다도 기술적인 변화가 한창인 나라로 그려져 있다. 미술감독에게 최대한 많은 컴퓨터 기기를 시야에 배치하라는 지시를 한 모양인지 영화를 보는 관객은 초대형 컴퓨터시장을 방문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또한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영화는 북한을 외부와 협력하는 나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남편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온갖 서적을 번역하며 밤을 새운다. 관객은 그 책들이 어느 나라 말로 쓰였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이 졸업장을 받으며 “Thank you very much!”라고 명쾌한 영어를 구사하는 걸 주목한다. 특히 관객은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 의아해하는데, 커다란 책가방 위에 수놓인 미키 마우스가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내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 문화의 대표적 상징인 미키 마우스를 체제 개방을 향한 북한의 의지로 읽어야 하는가? 반대로 서양전형의 물질적 안락을 추구하는 한 여학생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려고 한 건가? 아니면 별다른 뜻이 없는 유머 중 하나인가?

이처럼 관객은 의미 상징의 대부분을 포착하지 못한 채 완전히 이방인 같은 작품을 대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블록버스터’가 2006년 북한에서 개봉했을 당시 (공식적으로는) 모두 800만명에 달하는 관객이 보았다고 한다. 북한 인구의 3분의 1이 이 작품을 관람한 셈이다. 하지만 <한 여학생의 일기>는 냉전시대 소련의 대작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외부에 과시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다. 제작진은 이 영화가 국경을 넘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지난 2006년 평양국제영화제에서 프랑스의 프리티 픽처스사가 이 작품의 판권을 다른 세 작품과 함께 구매했다는 사실은 북한 영화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학적으로 보나 사상적으로 보나 <한 여학생의 일기>는 분명 북한 관객만을 겨냥한 작품이다. 지금 같은 국제영화제시대, 각종 이미지들이 전세계적으로 소통되고 있는 시대에, 이 작품이 굳이 해외관객의 구미에 억지로 맞추려고 한다거나 애써 그들에게 어필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결국 이 영화가 매우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물들은 우리 같은 유럽 관객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인물들이 분명히 있기는 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 바로 우리 눈앞에,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멀게,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