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 소설가나 영화감독, 혹은 만화가가 있다면 당신의 말이나 행동 혹은 실수담이 ‘작품’의 일부가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작품의 재미(혹은 예술적 성취)를 위해 약간의 과장은 불가피하므로, 당신의 캐릭터는 좀더 극적으로 바뀌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코듀로이 재킷과 청바지, 그리고 가족 스캔들>의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그런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표적인 작가다. 대놓고 세다리스 가족이 등장하는 에세이집 <코듀로이 재킷과…>를 쓴 것만 봐도 그렇다. 세다리스는 자신을 착한 넝마주이로 여기지만 그의 가족들은 투덜댄다. “이건 절대 어디 가서 말하지 마!”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은 결국 쓰여져 미국에서 많이 팔렸고 세다리스는 유머 작가로 정점에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을 요약하면 ‘세다리스 가족 삽질기’쯤 될 것이다. 세다리스가 애인과 프랑스에서 지낸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웃다보면 눈물이 난다는 식의 가족 감동사연은 아니다. 에피소드 하나. ‘나’의 어머니에게는 이모가 있다. 부자에 자식이 없어 더욱 좋은 할머니였다. ‘나’는 할머니가 연로해 쇠약해져 그들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자 유언장에서 이름이 빠질까 초조해한다. 결국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유산을 일부 물려받았는데 ‘나’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유산 총액을 알고자 친구에게 국세청이라며 전화를 걸게 시켰다. 엄마는 속지 않았다. 에피소드 둘. 뉴욕에서 청소대행업소에 고용되어 일하던 ‘나’는 “창문을 닦는 라디오 작가”라며 일간지에 소개되었다. 이후 온갖 이상한 손님들에 치이던 중, 청소를 하는 동안 옆에서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 남자 손님에게 걸리게 된다. 꾹 참고 청소를 끝낸 ‘나’는 왜 그랬냐고 묻는데 알고 보니 에로틱 청소대행 업소 연락처와 헷갈려 ‘나’에게 잘못 연락한 것이었다. 에피소드 셋. 감기 기운에 시달린 아버지는 수의사가 개에게 지어준 항생제를 먹었다. “망할 게 다 똑같지.”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해 ‘나’는 누나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나의 대답. “아버지가 그 약을 다 드시는 바람에 개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쩔 뻔했니?”
<코듀로이 재킷과…>는 <뉴요커> <에스콰이어> <GQ> 등의 매체에 기고했던 20여편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아니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어 아무 장에서나 펼쳐 읽으면 된다. 2001년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유머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작가의 글발은 웃기면 웃길수록 그의 가족을 걱정하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다. 이런 친구를 둔다면 참 재미있겠다. 가족으로는 말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