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집 아이들이 땟국은 흘려도 있는 집 얼굴 하얀 아이들보다 더 팔다리가 야무지던 때가 있었다. 더럽고 치사해도 저놈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리라 다짐하면 위로가 되던 시절이다. 가진 자들은 없는 병도 만들었지만 없는 이들은 있는 병도 모르고 잘 지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 무병·무탈·장수는 하늘의 뜻이 아니라 자본의 뜻이다.
경기도 이천시 호법동의 한 냉동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참사는 안전과 생명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밑천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노동자,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재중동포 일가족, 유족조차 나타나지 않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등 40명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경찰이 ‘화인 조사’, ‘신원 확인’, ‘공사 관계’, 세 갈래로 나눠 수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 밀어붙이는 공사 관행과 이에 따르는 불·탈법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우선 규모상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돼 있는 ‘안전 총괄 책임자’가 없었다. 각종 위험물질을 취급하면서도 지방노동청의 관리·감독을 전혀 받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허가없이 착공해 고발을 당하고도 보름 만에 이천시에서 건축허가를 받았다. 설계·시행·시공사는 물론 감리회사까지 같은 회사인데 아무런 제재없이 넘어갔다. 지난해 한 차례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사흘 뒤 소방시설 완공검사를 버젓이 받았다. 창문이나 환기구도 변변히 없는 축구장 세배 넓이의 작업장에 비상구는 단 한곳이었다. 화재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 세계 용어로 ‘야리까리’라고 하는 ‘물량도급’은 작업이 끝나면 돈을 주거나 다른 일감을 계약하는 방식이다. 공기를 단축시켜야 이익이 나므로 배선, 용접, 도색 등을 한꺼번에 한다. 이번 화재 현장도 영업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냉동 설비와 전기 설비, 파이프 보온 등을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가 급하니 옆에서 누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따질 겨를이 없었고, 기름증기와 유해가스가 들어찬 밀폐된 공간에서 환기 한번 제대로 못 시키고 일했을 것이다. 그 결과 우연한 불꽃이 “쇠가 다 녹는” 끔찍한 폭발을 일으켰다. 현장에서 일하던 57명 가운데 17명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죽고 다친 이들 가운데 이런 위험한 작업 환경을 가리고 따질 만한 이들이 없었다는 것은, 유족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한다. 명복과 빠른 치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