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뒤 전설이 되는 책들이 있다. (너무 뛰어나) 시대가 알아보지 못해서, (번역본인 경우) 정서가 맞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그런 저주받은 걸작들이 생겨난다. 이윤기씨가 번역을 다시 손봐 문학동네에서 재출간한 <비밀의 계절>은 그런 ‘절판의 전설’ 중 하나였다. 읽은 사람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하지만 읽지 않은 사람에게 쉽게 설명하기는 힘든 <비밀의 계절>은 미국에서 1992년 첫 출간 당시 계약금만 45만달러에, 초판 부수 7만5천부를 찍었다는 도나 타트의 전설적인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다.
시체가 발견된다. 이야기의 화자 리처드 페이펀은 그 시체에 자신(들)이 연관있음을 비추며 이야기를 과거로 돌린다. 페이펀은 캘리포니아의 가난한 시골뜨기였다. 애초에 대학 진학을 반대했던 부모님과의 반목과 별볼일없는 대학 생활에 지친 그는 우연히 발견한 버몬트주 햄든대학 요람(要覽)을 발견하고 고향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학자금을 지원받으며 햄든대학에 진학한 페이펀은 2년간 공부했던 그리스어 수업을 신청했다가 담당인 모로 교수가 학생을 다섯명만 받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 수업에는 모로 교수의 사전 인정과 다른 수업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지만 페이펀은 기꺼이 모로 교수의 학생이 된다. 같은 수업을 듣는 다섯명이 똘똘 뭉쳐 있어 그들과 섞이기 쉽지 않았던 페이펀이 그들과의 거리를 허물게 된 순간은 뜻밖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찾아온다.
두 살인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비밀의 계절>은 살인자를 밝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책은 아니다. 그리스어를 배우며 고전적 이상향에 심취했던 재능있는 젊은이들의 파국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페이펀은 고향을 떠나 자신을 과대포장해 상류 계급의 친구들과 어울리고자 했던 대학생으로 <위대한 개츠비>나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을 섞은 듯한 인물이다. 페이펀과 모로 교수, 그리고 모로 교수의 수업을 듣는 다섯 학생들이 입체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은 900페이지가 넘는 책장을 넘기는 일이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이야기의 초반 페이펀이 듣는 모로 교수의 수업 내용은 이들이 추구하는 지적인 이상향이 가닿을 광란의 최후의 지점을 암시한다. 주인공이 영문을 알지 못한 채 겪는 사건들은 모로 교수의 수업 내용과 더불어 이야기의 후반에서 일렬로 꿰어지며 놀라운 진실을 드러낸다. 아폴론의 이성적 세계와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찬 세계를 모두 탐하고자 한 지적 욕망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선 순간부터 <비밀의 계절>은 극한의 심리 게임으로 들어선다. 도나 타트는 신화적인 세계를 추구하려 했던 이상 때문에 결국 모든 걸 붕괴해버리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비밀의 계절>을 통해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