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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제작사들에 내일의 태양이 뜰까
문석 2008-01-08

기형적인 수익분배구조와 수익악화 등으로 고사위기 맞은 영화 제작사들… 해결책은 없나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어 성공시켜온 두사부필름이 적자라는 게 믿어지나.” 지난 연말 한 술자리에서 두사부필름의 대표이기도 한 윤제균 감독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1번가의 기적>이 300만명 가까운 관객이 들었는데 투자·배급사로부터 받은 수익금에서 배우들의 러닝개런티를 제하고 나니 2억원이 채 남지 않았다. 2007년의 수익이라곤 그것뿐이었는데, 1년 동안 든 비용은 5억원 정도 된다. 매달 직원 월급에 1500만원, 사무실 임대료 등에 500만 정도의 고정비용이 들고, 여러 편의 시나리오 개발 작업을 동시에 진행시키다 보면 한달 평균 4천만원 정도가 든다. 그동안의 수익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모자라 빚을 끌어야 하는 사정이다.”

한국 영화산업의 중요한 한축인 제작사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제 악화 단계를 지나 집단적인 붕괴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한국영화가 전반적으로 침체국면에 접어들기 이전에도 영세한 자본구조를 갖춘 제작사들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현재 제작사들이 맞고 있는 위기는 이전과 질적으로 다르다. 지난해부터 투자·배급사들이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제작사에 관행적으로 지급하던 개발비라는 명목의 선급금을 내주지 않고 있는데다 전반적인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을 꾸리던 제작사들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700만 넘어도 직원 월급 못 주는 제작사들

더욱 심각한 점은 흥행작을 만든 제작사도 수익을 제대로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번가의 기적>의 두사부필름이나 지난해 3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그놈 목소리>로 3억원 남짓한 최종 수익을 얻은 제작사 영화사 집의 사정은 차라리 나은 편이다. ‘예술영화’로는 놀라운 수치인 170만명을 동원한 <밀양>은 극장과 비디오 수익이 마이너스 6억원을 기록해 제작사 파인하우스필름에는 수익금이 전혀 돌아가지 않았으며, 730만 관객을 동원한 <화려한 휴가>의 제작사 기획시대 또한 수익을 거의 얻지 못할 분위기다. <밀양>의 경우 34억8천만원 정도의 순제작비가 들었지만, 장기상영을 하면서 마케팅 비용이 올라가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고, <화려한 휴가>는 100억원가량의 제작비가 들어 손익분기점이 500만명이었고, 위험부담이 높은 프로젝트였던 탓에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율이 8 대 2였으며, 제작비 인상분을 제작사가 부담하는 등 악재가 겹친 탓에 기획시대의 몫은 결국 없어지게 된 것이다.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는 “영화를 완성하는 것 자체에 큰 의의를 뒀기 때문에 할 말은 없지만, 700만이 넘는 관객이 든 영화를 만들고도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월급이 수개월씩 밀려 있는 상황이 이상하기는 하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수수료 많지만 돈 나올 구멍은…

제작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운 상황은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제작사 관계자들은 우선 투자·배급사와의 역관계에서의 문제를 제기한다. 투자·배급사는 극장으로부터 받은 수익금 중 10%의 배급수수료와 2%의 제작관리수수료, 순제작비, 마케팅비 등을 제한 뒤 애초 합의한 비율대로 제작사에 지급한다. 배우와 감독의 러닝개런티는 대개 제작사의 몫에서 떼어 지급한다. 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있다고 하자. 극장에서 투자·배급사로 넘어오는 돈은 관객 1명당 평균 2800원으로, 계산하면 56억원 정도. 여기서 배급수수료 10%를 떼면 50억원이 남는다. 이 영화의 제작비가 30억원이고 마케팅 비용이 10억원이었다고 한다면 남는 돈은 10억원. 투자사와 제작사가 합의한 배분 비율이 7 대 3이었다면 제작사에 돌아가는 돈은 3억원이어야 하지만, 대다수 투자·배급사가 마케팅 진행비, 해외 진행비, 금융비용(초기 투자분에 대해 은행예금 이율에 투자 기간을 합해 산출하는 비용)을 떼고 지급하는 탓에 실 지급비용은 이보다 적고, 배우나 감독에 대한 러닝개런티가 있다면 수익금은 더욱 줄어든다. 게다가 25% 정도의 법인세까지 내야 하는 탓에 200만명이라는 요즘 시장에서 흔치 않은 관객을 동원한다 해도 제작사의 수익은 얼마 되지 않게 된다. 제작사 관계자들은 “명목도 확실치 않은 이런저런 수수료가 너무 많고, 배급수수료도 관객 수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좀 깎아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투자상황이 어려워짐에 따라 투자사에 대한 제작사의 배분비율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제작사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제작사가 영화를 흥행시켜 자체적인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이제 거의 막혀버린 셈이다.

물론 투자·배급사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관계자는 “영화의 수익이 나면 제작사와 나누고, 손해를 보면 제작사는 아무런 책임을 안 지는 대신 투자사가 모두 떠안아야 하는 시스템이라 기본적으로 투자사에 불리하다”면서 “정당한 비용을 제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며, 배분비율도 서로가 기여한 정도에 따라 나누는 것이니 제작사에 불리할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제작사의 위기는 전체 영화산업이 수익을 못 올리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지, 대다수의 투자자는 제작사를 공생해야 할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씨받이형 제작자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하지만 현실은 제작사에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다수 투자·배급사들이 직접 또는 자회사를 통해 제작에 나서고 있는데다 원작 판권을 직접 구매하거나 프리랜서 프로듀서와 감독을 직접 고용하는 등 창작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다른 투자·배급사의 관계자는 “제작사에 가장 부담되는 비용이 개발비인데 그것을 투자·배급사가 대신 대겠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직접 작품을 개발한 뒤 마음이 맞는 제작사를 붙여 영화를 만드는데 그렇게 되면 제작사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투자사는 좀더 효율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제작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기획, 시나리오 개발 등 창작에서만큼은 주도권을 행사해왔던 제작사들은 투자자가 주도하는 콘텐츠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유인택 대표는 “대기업이라는 조직은 평균율에 입각한 영화를 추구하게 마련”이라면서 “새로운 영화, 낯선 영화를 통해 시장을 개척하려는 프로듀서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또한 “현재 한국영화가 맞이하고 있는 서사의 위기가 투자자본의 하청 신세가 돼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제작자는 “요즘 제작자들은 스스로를 (투자자의) ‘씨받이’라고 부른다”며 자조하듯 말했다.

물론 현재 제작사가 겪고 있는 문제는 투자·배급사의 ‘일방적인 횡포’나 ‘계약 위반’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참신한 영화의 부재, 부가판권시장과 해외시장의 붕괴, 관람수익의 정체 등 전반적인 영화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이에 대한 해법 또한 시장의 논리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작사의 위기가 몇몇 업체의 파산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한국영화의 서사와 문법 또는 위상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화산업 전체가 함께 고민하며 함께 해결해야 할 것이다.

“영화산업 생태계가 복원돼야 한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인터뷰

-제작사들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들었다. =돈을 번 영화를 만든 영화사들도 수익이 얼마 되지 않는다니 다른 제작사는 안 봐도 뻔하지 않나. 그동안 제작사들은 엄혹한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했거나 인정하더라도 관성으로 끌고 왔지만 이제는 그 관성도 한계에 다다랐다. 요즘 분위기가 얼마나 흉흉한가 하면, 내가 잠시 어디에 다녀왔더니 회사를 접고 낙향했다는 소문이 돌더라. (웃음)

-제작사들의 생존이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부가판권 시장이 붕괴해서 극장 수익이 전체 수익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스크린쿼터가 축소돼서 투자가 위축되고 있으며, 관람료가 장기간 묶여 있어서 수익이 제한돼 있는 등 거시적인 틀의 문제다. 이것은 비단 제작사뿐 아니라 전체 영화산업의 문제로, 영화산업 전반의 수익이 커져야 제작사의 여건도 좋아질 것이다. 결국 영화산업 생태계가 복원돼야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좀더 중단기적인 해법은 없나. =최근 콘텐츠에 대한 필요 때문에 통신업체들이 영화계에 진입했는데,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한국영화 발전에 있어 기획력을 갖춘 양질의 제작사들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제작사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자금지원 등을 해야 한다고 본다. 프로듀서들의 기획력을 보장함으로써 양질의 콘텐츠도 확보할 수 있다는 좀더 장기적인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다.

-투자·배급사의 문제는 없다고 보나. =배급수수료 같은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꽤 많은 관객이 들어도 투자·배급사에서 정산을 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다. 최소한 흥행작을 만들었으면 차기작을 준비할 수 있는 개발비 정도는 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배급수수료에 상한선을 두든가 관객 수가 많아짐에 따라 수수료의 비율을 낮추든가, 뭔가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제작가협회 차원의 논의는 없나. =영화산업 생태계를 복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덕션의 생존에 관해서는 개별 제작사 차원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올해 안에 상당수의 제작사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제작사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제기되는데. =한국 영화산업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던 시절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진 제작사들이 정리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별 업체로 보면 가슴아픈 일이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제작사가 이렇게까지 많을 필요는 없는 듯 보인다. 결국 구조조정의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