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은 아기자기한 맛과 절박한 아름다움을 한데 지닌 스포츠다. 세 사람이 달리며 공과 시선을 주고받는 패스는 살갑고, 공과 함께 육체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다이빙 슛의 몸짓은 가히 처절하다. 골의 기쁨을 음미할 잠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숨찬 공수 교대는 또 어떠한가. 치워도 치워도 매일 아침 정량의 무게로 다시 쌓이는 인생의 리듬처럼 가차없다. 덧붙이자면 핸드볼은 본디 여자들의 종목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7년 만에 장편영화 ‘코트’에 복귀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28분의 명승부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고 오열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2004년의 그날을 선수들이 공유한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명명한 영화는 어째서 그 순간이 가장 눈부신지 거슬러 올라가 연유를 들려준다.
영화의 시작은 괴상한 승리의 풍경이다. ‘2004 핸드볼 큰잔치’가 열리고 있는 실내 체육관. 우승팀이 결정되지만 관중석은 썰렁하고 축포는 맥없다. 승리 감독은 헹가래치려는 선수들을 벌컥 밀쳐낸다. 챔피언들을 기다리는 건 포상이 아니라 팀 해체 소식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태극 낭자’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거둬줄 팀도 없어 실업자로 내몰리는 암담한 상황에서, 여자 핸드볼 대표팀 감독 대행에 임명된 김혜경(김정은)은 과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같이 따낸 라이벌 한미숙(문소리)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을 태릉으로 하나둘 불러들인다. 그녀들은 모두 가방과 함께 나름의 고단한 사연을 짊어지고 들어온다(아이를 데리고 오는 이도 있다). 기회를 빼앗겼다고 느끼는 신진들은 선배들과 갈등을 빚고 급기야 혜경의 리더십을 불신임한 협회는 한때 혜경의 연인이기도 했던 스타 플레이어 안승필(엄태웅)을 감독으로 영입한다. 임순례 감독은, 대립과 오해가 풀리는 과정의 동력을 따뜻한 코미디에서 찾았다. 문소리, 김지영 등 배우들의 친밀감 넘치는 연기가 수훈을 세웠다. 반면 <우생순>은 감독의 전작에 비해 형식적으로 평이하다. 배우들의 노력이 빛나는 경기장면도 전체의 역동성을 조망하는 시야가 부족해 아쉽다. 안배된 인물 구성과 드라마를 좇다가 실화로 돌연 복귀하는 피날레도 적절한 시점보다 너무 이르거나 늦어 보인다.
천재, 괴짜, 겁쟁이, 푼수 등으로 고루 멤버를 구성하는 앙상블 드라마의 오랜 공식을 <우생순>은 살짝 변주한다. 영화 속 선수들은 한국사회에서 서른을 넘긴 일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부담을 대변한다. 센터백 미숙의 짐은 육아와 비정규직 노동. 사업을 하다가 사기당한 그녀의 남편은, 물정 모르고 운동만 해 온 선수들이 바깥세상에서 처하기 쉬운 불운을 대변한다. 문소리의 미숙은 현실과 찰싹 달라붙어 있는 여자다. 유통재벌 구단주가 팀을 해체하고 직원으로 받아주겠다는 소식에 그녀는 동료들처럼 펄쩍 뛰지 않는다. 그저 아들의 입에 반찬을 연신 떠넣으며 따진다. “정직원이겠죠? 계약직 아니고?” 마트에서 곤한 발을 끌고 퇴근하는 그녀가 수위에게 가방을 검사받는 장면은 조용히 가슴을 두드린다. 지도자로 성장한 능력있는 여성 혜경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이혼 경력. 대표팀 감독도 공직이니 이혼한 여자는 곤란하다는 논리다. 은퇴할 나이에 기량이 꽃핀 송정란(김지영)은 아내 뒷바라지에 신바람나는 남편과 행복하지만, 젊은 시절 주전에서 밀릴까봐 생리주기를 조절하다 불임이 된 아픔이 있다. 트리오보다 두살 어린 골키퍼 오수희(조은지)는 운동하는 여자는 매력없다는 편견 때문에 맞선에 실패한다.
<우생순>이 지닌 중요한 미덕은, 개인의 문제를 파편화하지 않으며 올림픽이라는 ‘대의’ 앞에 싸잡아 묻어버리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임순례 감독에게 인간의 실존은 사회적 관계의 집합이다. 무례, 기회주의, 가족이기주의 등 부정적 이미지와 연관돼온 한국 아줌마의 속성은 이 영화에서 긍정적인 품을 활짝 열어 보인다.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 때 성취감을 느끼고, 지배하기보다 관계를 보살피고 보존하는 데에 탁월한 여성의 특성은 감독과 작가가 제시하는 문제 해결의 열쇠다. <우생순>은 “여자도 할 수 있다”를 넘어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