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거의 모든 공중파를 통해서 거의 모든 국민들이 한두번 이상은 ‘시상식 무대’를 보았다. 방송사별, 분야별로 경쟁이 붙은 덕에 볼거리가 아주 많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들을 거리는 별로 없었다. 수상자 열에 일곱여덟은 “먼저 하느님께 감사”한 다음 “피디님과… 부모님과… 선후배 동료와… 사장님께 감사하다”는 천편일률적인 소감을 나열했다. 안재욱씨가 라디오 진행의 매력에 대해 “우리는 스탭들에게도 직접 밥상을 차려 드린다”는 ‘패러디’를 선보인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언제였던가. 심지어 김혜수씨조차도 그저 그런 멘트를 해서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대체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에서 ‘베껴다 쓸’ 말조차 없었던 거야?)
스타는 저 하늘에서 반짝이는 존재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산다. 이를테면 똑같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우리 옆집 언니가 하면 듣고 넘어가지만 배우 오지혜씨가 하면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근데 남자애 둘 키우는 우리 옆집 언니가 진짜 그런 말을 하면 신기하긴 하겠다. 자녀 성별 구성에 따라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로 분류하는데,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며)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것은 삼성이나 대통령 당선자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 지배층’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에 비례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스타들은 대중의 수준을 따라가고 있을까? 환경사랑이건 동물사랑이건, 전쟁반대건 차별반대건, 세상에 대해 할 말이 그렇게 없을까? 간단한 수상 소감이라도 재미있고 의미있게 해줄 수는 없을까? 해외 스타들처럼 자선모금을 위해 옷벗기 무대에 나서고, 돌고래 포획 반대 시위를 하다 체포되고, 면도기 회사의 기부를 조건으로 수염까지 깎진 않더라도 말이다. 제주에 ‘느리게 걷는 길’을 만드는 (사)제주올레의 노력에 대해 일부 관광업계 사람들은 “그런 건 국민 소득 3만달러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한다. 속도전식 렌터카 관광이 주를 이루는 제주에서 내 집과 마을을 잇는 좁은 길이란 뜻의 ‘올레’를 살리자는 움직임은 ‘여행 얼리어답터들’만의 꿈은 아닐 것이다. 회사 동료 박수진은 최근 제주를 다녀와서 “돈벌이를 위해서라도 3만달러 시대를 앞당기려면 3만달러 이상의 여유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아 우리의 스타들이 연말 시상식 무대에서 선보일 좀더 버라이어티한 멘트를 준비해주길 바란다. 그 멘트를 위해서라도 일년을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 그럼 넌 뭘 해줄 거냐고?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을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