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름이 바다를 뒤덮고 있다. 길거리에는 내일의 희망을 약속하는 말들이 흘러넘치지만, 세상은 그런 말장난 같은 약속만으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말들보다는 차라리 ‘내일 아침은 된장국에 생선을 구워야겠다’는 소박한 약속이 오히려 우리의 오늘을 평안하게 한다. <소라닌>(애니북스 펴냄)으로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오늘을 사실적으로 그려 호평받았던 아사노 이니오의 신작 <이 멋진 세상>과 <빛의 거리>는 검은 기름으로 덮인 세상에서 내일 아침의 평안을 말하는 듯하다(이번에 나온 두편의 옴니버스 단편집은 사실 <소라닌>보다 먼저 출간되었지만, 국내에는 한발 늦게 도착했다).
<이 멋진 세상>의 세상은 전혀 멋지지 않다. 세상엔 원인 불명의 괴질이 떠다니고, 어린 양아치들은 이유없이 어른들을 폭행하며, 왕따소녀는 목숨을 걸고 언덕에서 자전거를 굴리고서야 아이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세상물정 다 아는 것 같은 여고생은 유부남 선생님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생긴 아이로 어쩔 줄 몰라한다. <빛의 거리> 역시 밝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언제나 채광이 좋아 ‘빛의 거리’라는 애칭이 붙은 중산층 아파트 단지는 온갖 산업폐기물이 묻혀 있어 땅이 썩어가고, 빛의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평범한 중산층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곪아가고 있다. 소년은 자살도우미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으로 돈을 벌고, 스토커의 희생자인 줄 알았던 소녀는 알고보니 원조교제를 하는 꽃뱀이었으며, 아버지들은 가족들과 동반 자살하거나 이미 죽은 사람들처럼 세상을 살아간다. 일간지 사회면 한쪽에 매일 등장할 법한 사건들이 줄줄이 소시지 엮이듯 자연스럽게 엮여나오는 <이 멋진 세상>과 <빛의 거리>, 이렇게 두편의 옴니버스 단편집은 마치 세상의 모습을 한데 붙여놓은 조각보 같다. 하지만 아사노 이니오는 이 모자이크 조각보 위에 절망의 패턴과 희망의 패턴을 함께 기워넣는다. 현실과 꿈, 어느 것에도 제대로 열정을 쏟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던 청춘은 죽음 문턱에서 다시 생을 부여받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떠돌이 개는 노숙자와 체온을 나누며, 고향의 복원을 꿈꾸는 양아치는 죽음을 불사하고 하류인생에서 빠져나온다. 아사노 이니오의 희망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현실적이다. 이 모든 이들에게 사신(死神)은 말한다. “수고했어요”라고. 아사노 이니오는 그렇게 사람들을 위로한다.
80년생의 이 젊은 작가는 벌써 데뷔 7년차. 섬세하고 펜선으로 그려진 작풍은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기억될 만하며, 고전적인 듯하면서도 볼륨감있는 컷과 인물 배치는 치밀하게 계산된 콘티를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