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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시민의 파국, <심플 플랜>

EBS 12월29일(토) 밤 11시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 12월의 마지막 날 세 남자가 만났다. 우연히 눈 내리는 산속에 들어선 이들은 추락한 비행기 동체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이미 까마귀밥이 되어버린 시체와 현금 440만달러가 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시골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에 일생일대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셋 중 가장 모범적인 가정 생활을 영위하는 행크는 주저하지만 백수이자 말썽꾼인 제이콥과 루는 돈 냄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행크는 고심 끝에 돈에 얽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때까지 돈을 숨겨놓자고 제안하며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말한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행크의 삶은 이때부터 완전히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이날의 비밀 때문에 제이콥과 루는 어수룩한 행동을 반복하고,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세 남자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특히 가장 냉철하고 상식적인 인간이었던 행크는 점점 이성을 잃고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면서 자신과 가족의 미래 이외에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살인마가 되어간다.

샘 레이미의 <심플 플랜>은 소시민의 ‘소시민적’ 욕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소시민적’ 계획이 걷잡을 수 없는 탐욕이 되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면서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요한 시골 마을의 일상을 깨뜨리고 평범한 외피로 감춘 본성을 벗겨내는 외부에서 침입한 욕망의 대상, 그리고 하얀 눈으로 뒤덮인 평화로운 벌판과 그 위를 휘날리는 총성과 피의 이미지 등에서는 코언 형제의 <파고>가 겹친다. 샘 레이미는 우연한 사건이 필연적인 계획으로 변모하고, 그 계획이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는 과정을 질서있게 쌓아간다. 여기에는 미국의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 아메리칸드림의 허상 앞에서 자기 분열적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하루아침에 세 남자를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구원해줄 것만 같았던 440만달러는 결국 텅 빈 종잇조각 이상의 실체를 드러내지 못한 채 그 돈을 중심으로 얽혀가는 욕망의 네트워크만을 뼈저리게 가시화한다. 비뚤어진 아메리칸드림은 타자의 죽음과 교환된 뒤 결국 난로의 불길 속에서 한갓 재로 본질을 드러낸다. <이블 데드> <다크맨> <퀵 앤 데드> 등을 통해 현란한 장르극을 선보였던 샘 레이미의 <심플 플랜>은 이전에 비해 한결 심플하지만 알찬 전환점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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