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천정명)는 산속 도로에서 사고로 정신을 잃는다. 외진 숲속에서 눈을 뜬 그는 정체불명의 어린 소녀 영희(심은경)를 따라간다. 마치 동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즐거운 아이들의 집’에 도착한 그는 영희 외에 오빠 만복(은원재)과 막내동생 정순(진지희), 그리고 그들의 부모를 만난다. 하룻밤 신세를 진 은수는 아이들이 알려준 대로 집을 나서지만 미로를 헤맨 것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은수는 매일 숲속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급기야 아이들의 부모가 사라져버린다. 은수의 불안과 의혹이 깊어가는 가운데 다락방에서는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눈치챈다.
데뷔작 <남극일기>(2005)로 의미있는 실패를 경험했던 임필성 감독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세계는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여전하다. 원색으로 가득한 즐거운 아이들의 집이 화려하고 달콤할수록 결국 아이들을 향한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그렇게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남극일기>도 가상의 아버지 도형(송강호)을 극복하고자 하는 어린 민재(유지태)의 이야기였다면, <헨젤과 그레텔>은 좀더 직접적으로 유년의 공포라는 테마를 끌고 들어온다. <남극일기>에서 실제 아버지 도형을 원망하다 죽은 아이는 13살이었다. 그 아이가 영원히 13살로 성장이 멈춰 아버지의 주변을 맴돌았던 것처럼, <헨젤과 그레텔>의 13살 소년 만복도 더이상의 성장을 원치 않는다. 임필성 감독 세계의 어떤 원형이 담겨 있다 할 수 있는 단편 <소년기>(1999)의 소년처럼 <헨젤과 그레텔>도 통과의례의 공포 혹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표정 이면에 도사린 공포를 그린다. 그 공포는 바로 어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남극일기>에서 열린 남극의 도달 불능점을 향한 욕망이, 폐쇄된 집안에서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다는 속죄의 정서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헨젤과 그레텔>은 영화 속 여러 요소들을 대중적 호흡으로 봉합하는 데 주춤했던 <남극일기>와는 반대로, 후반부에 이르러 아이들의 비밀을 드라마틱하고 명쾌하게 드러내는데, 그 클라이맥스의 정서는 바로 아이들의 처연한 운명을 향한 깊은 슬픔이다. 다만 날짜를 반복하며 그 전형성으로 이르는 과정이 완만하다는 점은 아쉬움이다. 더불어 천정명은 며칠째 갇혀 지낸 사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절제돼 있어 오히려 아이들의 연기가 더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