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도이자 북인도를 대표하는 도시 델리에서 남인도산 영화의 개봉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이 영화들은 델리에 거주하고 있는 200만명 이상의 남인도인들을 주요 관객층으로 하고 있는데 개봉 방식이 참으로 독특하다. 영화의 개봉은 극장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남인도 문화단체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남인도영화 중 특히 텔루구지역 영화의 활동이 가장 눈에 띈다. 텔루구영화는 델리에서만 3곳의 텔루구 문화단체에 의해서 상영되고 있는데 대강당, 쇼핑몰 등에서 정기적으로 상영회가 열린다. 말라얄람과 칸나다지역 영화는 수요가 적어 무료상영을 하고 있지만 텔루구영화는 일반 극장 입장료의 7배에 달하는 500루피(1만25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도 표를 구하기가 힘들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텔루구어로 제작된 영화(텔루구어로 더빙된 영화까지 포함)는 웬만한 발리우드영화보다 흥행수입이 더 안정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고향의 음식 없이는 살 수 있어도 고향의 영화가 없으면 살 수 없다’라고 말하는 텔루구어권 출신들의 뜨거운 영화사랑과 함께 남인도 영화산업의 또 다른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타밀어 영화계 슈퍼스타 라즈니 칸트가 주연한 영화 <시바지: 더 보스>는 오리지널 타밀어 필름을 대여할 경우 이틀 상영에 약 3만루피를 제작사에 지불하면 되지만 텔루구어로 더빙된 필름은 8배 이상인 25만루피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구조는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타밀계 인도인들이 불법 복제한 타밀어 버전 DVD가 인도로 유입된 것과 관련있다. 타밀어 영화산업은 엄청난 수의 극장 관객을 잃게 만든 불법복제 DVD의 유포로 인해 헐값에 필름을 대여하게 된 것이다. 반면 텔루구 영화계는 불법복제로부터 아직은 안전지대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고액의 입장료를 내고서라도 문화단체가 운영하는 영화 상영회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관객은 상대적으로 비싼 입장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상영회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덕분에 텔루구 문화단체는 필름 대여료, 강당 사용료 외에 영화상영 수익금의 30%나 되는 흥행세(Entertainment Tax)를 내고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문화단체의 남인도영화 상영이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최근 들어 멀티플렉스 운영자들이 남인도영화 상영을 위한 스크린 할당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를 대표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업체 PVR그룹의 아쉬쉬 사세나는 “발리우드 영화산업의 중심부인 뭄바이에 위치한 PVR Mulund 극장은 2개 스크린을 남인도영화 개봉을 위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극장 수입의 30%가 이들 남인도영화 상영에서 나온다”며 “델리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운영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타밀어 영화 <빌라>(Billa)가 델리 서부에 위치한 PVR 한곳과 델리의 위성도시 격인 노이다와 구르가온에 위치한 PVR 등 모두 세곳에서 개봉했다. 델리 시내의 극장에서 남인도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