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기적이라는 말 외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14년 12월24일, 가장 치열했던 전장인 서부전선에 이틀 동안의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사랑과 평화를 전하기 위해 예수가 세상에 내려온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독일군과 프랑스, 영국 병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선물을 교환했으며 심지어 축구 경기까지 벌였던 것이다.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특이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는 사건 ‘크리스마스 휴전’(The Christmas Truce)을 소재로 삼은 <메리 크리스마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어처구니없는 발명품인 전쟁 속에서 스스로의 존엄과 공동선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병사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의 한축에는 독일의 오페라 스타인 니콜라우스(벤노 퓌어만)와 안나(다이앤 크루거)가 있다. 전쟁이 발발해 니콜라우스가 징집되자 안나는 그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전선에서의 공연을 계획한다. 독일군과 프랑스, 스코틀랜드 연합군의 참호에도 근심어린 표정들이 보인다. 프랑스군의 오데베르 중위(기욤 카네)는 독일에 있는 아내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자신의 신도들을 따라 참전한 스코틀랜드군의 파머 신부(게리 루이스)는 진정한 믿음을 실현하려 노력 중이며, 독일군 장교 호스트마이어는 나아지지 않는 전황에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이때 안나와 니콜라우스가 독일군 참호에 나타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자 병사들은 총을 버리고 참호 바깥으로 나와 그들만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시작한다. 그들은 본국에서 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함께 즐기고,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한번 마음을 연 그들이 다시금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건 불가능해진다. 병사들의 마음속에 놓여 있던 처절한 분노와 증오의 철조망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세 나라의 군인들은 휴전을 연장해 전장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을 수습하고 자국의 폭격 정보를 일러주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웰컴 투 동막골>에 비유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적군끼리의 우정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기분 좋은 웃음과 가슴이 뭉그러지는 슬픔을 동시에 전한다. 동막골에서 만난 국군과 인민군이 애초부터 하나였듯, 날선 전장에서 조우한 호스트마이어와 오데베르는 “뤼바벵에서 술을 한잔 할 수도 있었”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 휴전을 병사들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된 각국 사령부는 ‘이적행위’라며 이들을 반역자 취급하지만, 전쟁은 대부분이 농부였던 병사들과는 처음부터 무관한 일이었다. “나는 칠면조를 먹으면서 ‘독일인을 죽이자’고 이야기하는 사람(프랑스 고위 장교)들보다는 독일인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는 오데베르의 대사처럼, 전쟁은 이를 통해 이득을 꾀하는 정치꾼이나 고위 장교, 또는 “주님의 뜻으로 독일인을 몰살하라”고 설교하는 고위 사제들에게나 의미있는 것일 뿐이다.
영화적인 새로움보다는 다소 진부한 구성 안에서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설파하고, 실화를 다소 작위적으로 짜맞췄음에도 불구하고(역사적 사실이 궁금하다면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예지 펴냄)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이 ‘작은 평화’가 거대한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훨씬 소중한 것임을 설득력있게 전한다는 점에서 함부로 내칠 수 없는 영화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어떤 절절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면 그건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의 개인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전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농부이면서도 사회주의자였기에 항상 대다수가 우파였던 지역사회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적대적인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는다는 이 이야기를 찾아낸 뒤 많이 울었던 것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으리라”고 그는 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서부전선 이상없다>처럼 전쟁의 험상궂은 표정을 드러내 전쟁을 혐오하게 만드는 대신, 잠시나마 세상에 강림한 평화를 보여줌으로써 이를 갈망하게 만드는 영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전쟁을 주제로 서신을 교환하던 아인슈타인이 남긴 다음의 말처럼. “우리 평화주의자들은 전쟁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나머지 인류도 평화주의자가 될까요?”